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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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13-09-22 15: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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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창세기 12:1-3 
설교일 2013-09-22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오디오파일 듣기/내려받기]

■ 성서 본문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창세기 12:1-3>


■ 들어가는 이야기

올해는 추석연휴가 오랜만에 닷새나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오늘이 마지막 날입니다. 명절 잘 보내셨습니까? 음식을 만들고 식구들 뒤치다꺼리를 한다고 고생하신 분들도 계시겠고,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일터에서 근무를 하신 분들도 계시겠고, 장거리를 다닌다고 길에서 고생하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아무튼 고생 많으셨습니다. 내가 아닌 남을 위해서 봉사하느라고 수고하신 여러분 모두에게 우리 주님의 은총이 넘치도록 임하시기를, 마음과 뜻을 모아 기원합니다.

■ 버림과 나눔

추석이 되면 달도 꽉 차고 마음도 여유롭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풍성한 것은 음식일 것입니다. 요즘은 밥 얻으러 다니는 거지를 거의 볼 수 없습니다만, 옛날에는 추석이 거지들의 명절이기도 했습니다. 평소보다 맛좋은 것들을 많이 얻어먹을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거지들은 부잣집에서 동냥한 음식은 절대로 그냥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반드시 물을 붓고 끓인 다음에야 먹었습니다. 그 이유는, 부자는 쌓아둔 음식 중에서 묵은 음식만을 골라서 거지에게 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걸 모르는 신출내기 거지들은 부잣집에서 나온 음식을 ‘좋아라!’ 하며 먹다가 식중독으로 죽을 고생을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집에서 나온 음식은 아무런 걱정 없이 그대로 먹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쌓아둘 음식이 없으니까, 그렇게 기름지지는 않지만 언제나 지금 자기들이 먹고 있던 음식을 나누어주기 때문이었습니다. ― 이재철, ≪새신자반≫(홍성사, 1997), 91쪽. 거지가 밥을 얻어먹으러 다니던 시절, 냉장고가 무엇인지 모르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자기가 못 쓸 것을 주는 것은 ‘버림’이고, 자기가 써야 할 것을 주는 것은 ‘나눔’입니다. 오늘 우리가 축복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데, 복도 음식과 마찬가지입니다. 무한정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질 복을 나눌 때 남들도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 축복

‘축복’(祝福)이란 말을 뜯어보면 ‘축’(祝)은 빈다, 기원한다,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말을 씁니다만,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그것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축복’이란 말이 복을 빈다, 또는 복을 빌어준다는 말인데, 하나님이 누구에게 복을 빈다는 말입니까?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께서 어딜 가서 복을 빌겠습니까? 하나님은 복을 내리시는 분이지, 복을 비는 분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런 표현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들으면 그만이지요. 몇 주 전에 주보에도 실었습니다만, 트위터에서 본 이야기입니다. 해명이란 스님이 있는데, 이분이 중이 되기 전의 일입니다. 이분이 어느 날 어떤 고승을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스님, 저를 위해서 복을 빌어 주십시오!” 그때 큰스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세상 복은 정해져 있는데 너만을 위해서 많은 복을 빌어 달라? 그건 누군가의 복을 빼앗아 오자는 얘긴데, 네가 나에게 그걸 부탁하는 거냐? 나는 그런 짓은 할 수 없다.” 그때 이분은 크게 깨달았고, 그 일을 계기로 머리를 깎았다고 합니다. 복이라는 것은 총량이 정해져 있어서 모든 사람이 무한정 가질 수는 없습니다. 옛날 이삭이 두 아들에게 축복을 해줄 때 동생 야곱이 형의 축복을 먼저 받아버리고 말았지요. 형인 에서가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찾아와서, 자기에게도 똑같은 복을 빌어달라고 씩씩거리며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저에게 주실 복을 하나도 남겨 두지 않으셨습니까?”(창세기 27:36). 그러나 애석하게도 에서가 받을 복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 어느 갑판장 이야기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소설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18세기에 성품 좋은 어떤 갑판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주 아량이 넓은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부유한 집안의 어떤 러시아 처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수중에는 그동안 모아놓은 상당한 돈이 있었기에, 처녀의 아버지는 두 사람의 결혼을 승낙했습니다. 결혼식을 앞둔 어느 날 그는 처음으로 신부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의 발밑에 몸을 던진 채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고백했습니다. 자신은 사실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데, 그 남자가 가난해서 아버지가 절대로 결혼을 허락하지 않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너그러운 친구는 애원하는 여인을 일단 안심시켰습니다. 그는 그녀가 사랑한다는 연인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청혼을 포기했습니다. 거기다가 그는 그동안 뼈 빠지게 돈을 모아서 사놓은 농장과 함께, 거기에서 기를 가축들을 사려고 준비해둔 돈까지 몽땅 털어서 자신의 연적인 그 남자에게 주어버렸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처녀의 아버지에게 가서,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처녀의 아버지는 그의 청을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그는 노인의 고집을 결코 꺾을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조국을 떠나서, 그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까지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 메리 셸리(임종기 역), ≪프랑켄슈타인≫((주)문예출판사, 2008), 24-26쪽.

■ 맺는 이야기

어떻습니까? 멋진 남자인가요? 사랑하는 사람까지도 남에게 양보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드린 말씀은 아닙니다. 남에게 주기 위해서는 자기 것을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해드린 이야기일 뿐입니다. 남에게 복을 베푸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복’(福)이란 말의 어원은 제사상에 올렸던 고기와 술입니다. 이걸 먹고 마시는 것을 ‘음복’(飮福)이라고 하지요. 제사상의 술과 고기가 무한정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양이 정해져 있지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의 근원’이 되라고 하신 것은 그냥 상징적인 말이 아닙니다. 내가 너에게 복을 줄 터이니, 너는 네가 가진 것을 남들과 나누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복을 나누는 사람은 자연히 더 큰 복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입니다. 복이란 나누는 사람에게 더 붙는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남에게 복을 파줄 수 있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41 가을 밤 외로운 밤
240 가을 밤
239 가시밭의 백합화
238 가시 돋친 채찍을 발길로 차지 마라!
237 가슴을 헤쳐 젖을 물렸다
236 가난 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235 “힘없이 팔을 늘어뜨리고 있지 말아라!”
234 “하나님의 양떼를 먹이십시오!”
233 “하나님을 만들어 주십시오!”
232 “하나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231 “평화가 있어라!”
230 “청춘을 돌려다오!”
229 “천둥과 같은 소리를 들으십시오!”
228 “주님보다 앞서 가서”
227 “주님께서 쉬시지 못하게!”
226 “주님께서 내 마음에 안겨주신 기쁨”
225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224 “일출봉에 해 뜨거든”
223 “이러지 마라, 나는 네 동료다!”
222 “의심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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