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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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린 날 2006-01-25 
실린 곳 과갤 
<논문 한 편>

내가 서울대에서 본 일이다.

중년의 박사 하나가 국과수 장성분소에 가서 떨리는 손으로 눈문 한 부를 내놓으면서,

"황송하지만 이 줄기세포가 환자 맞춤형이 맞는지 좀 보아 주십시오"

하고 그는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이 국과수 사람의 입을 쳐다본다.

국과수 사람은 박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논문을 대충 훑어 보고

"좋소"

하고 내어 준다. 그는 '좋소'라는 말에 기쁜 얼굴로 논문을 받아서 가슴 깊이 집어 넣고 절을 몇 번이나 하며 간다. 그는 뒤를 자꾸 돌아보며 얼마를 가더니 서울대 IRB를 찾아 들어갔다. 품 속에 손을 넣고 한참 꾸물거리다가 또 논문을 내어 놓으며,

"이것이 제대로 된 논문이오니까?"

하고 묻는다.

IRB 사람도 호기심 있는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 난자는 어디서 빼돌렸어?"

박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러면 돈주고 매매했단 말이냐?"

"누가 난자를 팝니까? 난자 뺄 때 안 아프나요? 어서 도로 주십시오."

박사는 손을 내밀었다. IRB 사람은 웃으면서

"좋소"

하고 던져 주었다.

그는 얼른 집어서 가슴에 품고 황망히 달아난다.

뒤를 흘끔흘끔 돌아다보며 얼마를 허덕이며 달아나더니 별안간 우뚝 선다.

서서 그 논문이 빠지지나 않았나 만져 보는 것이다. 거친 손가락이 가운 위로 그 논문을 쥘 때 그는 다시 웃는다. 그리고 또 얼마를 걸어가다가 어떤 골목 으슥한 곳으로 찾아 들어가더니 벽돌담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논문을 손바닥에 놓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열중해 있었는지 내가 가까이 선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를 만들었습니까?"

하고 나는 물었다. 그는 내 말소리에 움찔하면서 손을 가슴에 숨겼다.

그리고는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서 달아나려고 했다.

"염려 마십시오, 검증하지 않소."

하고 나는 그를 안심시키려 하였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는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은 사실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가 아닙니다. 어떻게 10년은 먼 기술을 지금 개발합니까? 배반포 하나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연구원을 협박해서 난자를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 난자로 계속 실험을 했습니다. 이것을 수백차례 반복하다 보니 우연히 정체모를 이상한 줄기세포가 하나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을 데이터를 조작하여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로 바꾸어 논문에 실었습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그 논문을 조작했단 말이오? 그 논문으로 무얼 하려오?"

하고 물었다.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사이언스에 논문을 싣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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