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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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틀잡이 십년에 엉치 내려앉는다."

여성의 베 짜기 작업에 엉덩이가 중요하고, 베 짜기를 많이 하면 엉덩이가 상할 수 있다는 말. 다음은 예문.

며느리감 될 처녀를 놓고 '길쌈할 줄 아느냐'를 확인하는 것이 남도지방의 풍습처럼 되어버린 것은 단순히 부업을 시켜먹자는 의도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자는 엉치가 실해야 하고, 남자는 어깨가 실해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그것은 곧 '여자의 힘은 엉치에서 나오고, 남자의 기운은 어깨에서 나온다'는 말과 맞통하는 것이었다. 여자에게 있어서 엉덩이가 실해야 한다는 데는 여러 가지 의미가 복합적으로 담겨 있었다. 엉덩이가 실하지 않고서는 먼저, 남자를 제대로 실을 수 없는 데다, 애기집이 실할 리 없고, 애기집이 실할 리 없으니 애기가 실할 수 없고, 실하지 않은 애기를 실하지 않은 엉덩이가 무사하게 받쳐낼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여자가 엉덩이가 실하지 않고서는 베틀에 올라앉을 수가 없었다. 베틀에 앉으면 날을 감은 도투마리와 수평을 이루어 힘을 받는 부티를 먼저 허리가 아닌 엉덩이에 둘러야 했다. 그래야만 서로 엇갈린 날들이 팽팽해지며 제자리를 잡게 되고, 베짜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베짜기란 베틀신을 꿴 다리를 뻗쳤다 당겼다 하는 동작에 따라 오른손에 든 북을 날 사이로 민첩하게 밀어던지고, 바디로 날과 씨를 쳤던 왼손은 재빨리 북을 되받아 오른쪽으로 보내야 하고, 그 사이에 오른손은 바디를 치고 다시 돌아온 북을 받아야 하는, 팔다리가 동시에 움직이는 연속동작인 동시에 끝없는 반복동작이었고, 전신노동이었다. 그런데 그 전신노동의 중심을 이루는 힘은 부티를 두른 엉덩이가 지탱하고 있었다. 그래서 엉덩이가 부실한 여자는 베틀에 앉을 수 없었고, 베틀잡이 십년에 엉치 내려앉는다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며느리감이 될 처녀를 상대로 '길쌈할 줄 아느냐'고 묻는 것은 부업능력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종합건강진단인 셈이었다.

조정래, 《태백산맥 5》((주)도서출판 한길사, 1993), 90-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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