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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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재가 스페인의 네번째 키커 호아킨의 슈팅을 쳐낸 다음 두손을 번쩍 올린뒤 입을 앙 다물고 씩 웃는 순간, 김병지 얼굴이 떠 올랐다. 김병지가 저 자리에 서긴 틀렸구나. 이운재는 게임을 거듭할 수록 믿음직스러워진다. 이제 야신상을 넘보는 처지이니 혹시 김병지에게도 기회가 돌아갈수 있을가 하는 기대도 사라졌다. 폴튜갈 전이 승리로 끝나자 김병지가 뛰어나와 출전선수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즐거운 표정으로 슬라이딩을 하는 모습을 보며 그의 마음이 얼마나 쓰라렸을가 생각했다. 미국과의 경기에서 골기회를 무산시키고 연습장광경에도 얼굴이 잘 안비치는 최용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제 최용수는 끝났다는 비난을 들었을 터인데도 선수들과 어울려 겅중겅중 뛰면서 16강, 8강, 4강확정의 순간을 기뻐했다.

축구가,우리팀의 선전이 온 국민에게 일생 잊지 못할 감동적인 순간을 연달아 마련해주고 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마주치는 사람마다 서로서로에 대한 선의와 배려가 넘치는 거리풍경에서 한국인의 얼굴표정이 행복하게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러나 월드컵 축제기간동안 마음속으로 슬픔을 참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한번도 출장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벤치를 지키고 있는 대기선수들일 것이다. 축포가 터지고 경기장에 뛰어나가 얼싸안고 기뻐한뒤 숙소에 돌아와서 이들은 매일 밤 용수철처럼 뛰어나가 경기장을 휘젓는 꿈을 꿀 것이다.

매번 경기에 출전했던 선수들은 육체적으로 지치고 몸은 상처투성이겠지만 정신은 충일되어 있다.그러나 한번도 출장하지 못한 선수들은 이중 삼중의 고통에 시달리느라 정신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 힘든 훈련을 거뜬히 마치고 최종 엔트리에 낀 이들은 기량면에서 한국최고의 선수라는 자부심은 가득하지만 한번도 출전을 못했다는 사실은 평생을 두고두고 상처가 될수 있다. 그러나 언제라도 이들이 교체되어 뛸수 있기에 주전선수들이 부상을 무릅쓰고 경기장에서 쓰러져 죽을 각오로 뛰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축구협회는 선수들에게 주는 포상금을 차등지급하겠다고 한다. 출장횟수가 가장 중요하다니 한번도 출장하지 못한 선수들은 어떻게 되나. 뿐만아니라 출전했던 선수들도 팀의 공헌도에 따라 차등지급하겠다고 한다. 웃기는 이야기다. 송종국이 안정환보다 공헌도가 없는가. 최진철이 김남일보다 황선홍이 홍명보보다 공헌도가 낮은가. 잠간씩 나왔지만 이천수나 차두리가 국민들을 얼마나 즐겁게 했는가. 피말리는 긴장감이 감돌때 대표팀의 막내들이 신나는 표정으로 겅중겅중 그라운드로 교체되어 뛰어들어갈때 국민들은 유쾌해했다. 비록 실패를 했지만 차두리가 오버해드킥을 했을때 우리는 얼마나 즐거웠는가.히딩크 감독은 협회쪽에 대기선수들을 포함한 모든 선수들에게 포상을 꼭같이 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협회는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나. 옐로카드 아니 레드카드감이다.

우리는 히딩크가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 아는바 없다. 안정환이 베컴이 호나우도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관심이 없다. 우리선수들의 프로필엔 다른나라 선수들의 프로필엔 없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의 학력이 즐비하다. 선수가 골을 넣으면 골을 넣은 선수들의 모교들이 대대적으로 광고를 내고 있다. 홍명보가 어느 대학을 나왔다고 하여 그 대학이 축구명문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하나도 없다. 히딩크는 학연과 지연 연공서열주의를 철저히 배제하여 선수들의 능력을 폭발적으로 키워냈는데도 우리사회는 아직도 연고주의를 떠받들고 있다. 이것도 레드카드감이다.

우리 속담에 잔치끝에 싸움나고 찬물한잔에도 눈물난다는 말이 있다. 단군이래 최대의 사건이라는 월드컵잔치가 끝나고 마음 상해 눈물짓는 사람이 없도록,한달내내 선수들과 함께 열전을 치른 국민들의 축제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선주 논설위원 sunj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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