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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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린 곳 1988-05-17 조선일보 [만물상] 
해방 전에 서울에서 제일가는 뒷골목의 왕초가 김두한(金斗漢)이었다. 그에게는 김무억이라는 의리의 동생이 있었다. 힘으론 아무도 그를 당해낼 사람이 없었다. 어는 날 그가 누군 줄 모르고 졸개들이 몇이 덤벼들었다. 그는 그들의 뭇매를 피하면서 말했다.

"나는 너희들을 때릴 수가 없다. 내가 김무억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커지면 지켜야 할 위신이 있다. 위신 때문에 해야 할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 분수가 또 있다. 그건 아햇사람이 위를 넘보지 말라는 데만 쓰는 말이 아니다. 웃사람도 웃사람답게 지킬 도리가 있다는 말이다. 김무억은 요새말로 폭력배의 부두목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자기 위신과 명예를 지킬 줄 알았다.

현대노조 사건은 회사측에서 납치극을 벌인 혐의가 더욱 짙어져만 간다.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대기업이 옛날의 뒷골목 깡패만큼도 위신을 차리지 못한 꼴이 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노조 결성을 막으라는 지시가 상부에서 나왔을 가능성은 많다. 그 '무슨 수'가 노조위원장을 납치하라는 얘기는 아니라고 발뺌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더욱 치사한 얘기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아무리 다급해져도 지켜야 할 정도가 있고, 따라서는 안 될 사도(邪道)가 있다. 버젓하게 설득하지 못하니까 고급 카페와 살롱에서 술과 여자로 농락하려 들었다. 그것부터가 떳떳하지 못한 짓이었다. 알고보니 문제의 1천7백만원도 서씨를 회사가 매수하는 데 쓴 돈이었던 모양이다. 더욱 치사한 짓이다. 회사는 한 인간의 품성을 짓밟는 것쯤은 전혀 개의하지 않았다.

엊그제까지도 회사측에서는 전혀 회사는 모르는 일이라고 딱잘라 말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설마하니 그만한 대기업이 그렇게나 추하게 처신했다고는 믿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에 또 그게 사실이라면 간부 한두 사람만이 죄를 뒤집어쓸 게 틀림이 없다. 하나 그건 두번째, 세번째 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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