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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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린 날 1994-09-10 
실린 곳 《먼 그날 같은 오늘》 
사막에서 만난 여우 이야기를 할까 한다. 생태계의 놀라운 신비라고 해도 좋겠지.

사막은 죽어 있는 땅이 아니다. 사막은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이 숨쉬며 아우성치며 살아 있는 그런 땅이다. 생명으로 가득찬 그 아득한 대지… 모래 위를 씨앗들이 날아다닌다.

다만 물이 없을 뿐이다.

사막에는 물만 뿌리면 생명이 자란다. 수만년 동안 무엇을 심지도 않았고, 아무것도 자라지 않은 땅이기에 오히려 그 땅이 기름지다고 생각해 보기 바란다.

원유 채취시설이 있거나 대형공사가 진행중인 곳에서 사람들이 쓰고 버린 물이 사막으로 흘러들어가면, 그때부터 놀라운 생명의 합창이 시작된다. 물을 버리면 거기에서 갈대가 자라기 시작한다.

어디에서 어떻게 씨앗이 날아오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누가 씨를 뿌리지 않아도 갈대가 자라기 시작한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이 있다면 그 물 속에 고기가 자란다는 거다.

씨앗이라면 바람에 날아온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물고기가 어떻게 그곳에 찾아와 살기 시작하는 것인지, 갈대와 고기가 자라기 시작하는 그 습기찬 땅을 찾아 이번에는 달팽이가 찾아온다. 그 느린 달팽이가 어디에서 어떻게 사막을 가로질러 온 것일까.

그리고 그 달팽이를 먹이로 삼으며 여우가 살기 시작한다. 생명을 가진 그 무엇도 눈에 띄지 않던 모래언덕에서의 감동이 허무와의 만남이었다면 갈대숲에서 만나는 생명의 찬가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신비와 지혜로움을.

사막에서 만난 여우는 그 몸의 크기가 토끼만했다. 나는 처음에 토끼인 줄 알았는데 그게 여우였어. 색깔까지도 닮아서, 눈처럼 흰 털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상스레 귀가 컸다. 무엇을 듣기 위해 그렇게 큰 귀를 가져야만 했는지 모르겠다. 어른들 손만한 크기에 삼각형 모양을 한 귀를 가지고 있더구나. 이 여우가 모래에 굴을 파놓고 거기 들어가 살고 있었어.

놀라운 것은 이 여우의 지혜란다. 여우는 달팽이를 다 잡아먹어버리는 바보짓을 결코 하지 않아. 그 달팽이들이 결코 멸종이 되지 않고 계속 살아 있도록 얼마쯤은 남겨놓고, 나머지만 조금씩 잡아 먹는 거야. '먹이사슬'의 놀라움. 그렇게 해서 모든 생명체는 서로 고리를 이루며 이 지구 위를 살아가고 있었다.

희고 큰 귀를 한 이 여우를 이제 누가 잡아 먹을까. 불행하게도 그게 바로 우리들, 사람들이었다.

― 〈사막에서 쓴 편지〉에서.

한수산, 《먼 그날 같은 오늘》(나남출판, 1994), 300-302쪽.

1. 20080224 Antio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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