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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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린 날 2006-12-01 
실린 곳 2006 기장 구역공과 
한 청년이 폐결핵을 앓아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죽을 날이 멀지 않았다는 판단 하에 친지들과 교역자들이 찾아와 고별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날 밤이었습니다. 청년은 한 잠도 자지 못하고 번민했습니다. 기와 죽을 바에야 남자답게 목숨을 끊어버리자는 생각을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떠올렸습니다.

‘예수님이라면 가만히 앉아 죽기를 기다리지 않을 것이며 스스로 목숨을 끊지도 않을 것이다. 죽는 시간을 기다리지 말고 남은 시간을 하나님께 바치자.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려고 오셨으니 틀림없이 섬길 자를 찾아가셨을 게 아닌가. 나 역시 누군가를 남은 한 순간의 삶이라도 섬겨봄이 어떨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다음날 청년은 눈을 뜨자마자 몸을 일으켰습니다. 온몸이 휘청거렸지만 힘을 내어 가재도구를 정리한 후 몇 가지 살림 도구만 들고 빈민굴로 향했습니다. 청년은 창녀들에게 전도를 하며 빈민굴 한 귀퉁이에 십자가를 걸어놓고 살기 시작했습니다.

소문을 듣고 청년의 막역한 친구가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십자가가 걸린 청년의 집에서 어떤 주정뱅이가 떼를 써서 돈을 뜯어내고, 그 돈으로 술을 먹고 도박까지 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또 어떤 저녁 예배시간에는 창녀들이 가득 모였는데, 또 다른 주정뱅이가 들어와 한 창녀를 데리고 나가는 장면도 보았습니다. 이를 본 친구는 잔뜩 화를 냈습니다.

“다 죽어 간다더니 주정뱅이, 노름장이, 창녀들이랑 어울리려고 엄살을 떨었던 거구만, 허, 참! 어찌 이런 것을 두고 예배라 하고, 선교라 할 수 있겠는가? 자네는 위선자이며 악을 조장하는 사람이야.”

하지만 청년은 씨익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들이 나를 열 번 속이고, 심지어 칼로 나를 찌른다고 할지라도 저들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변함이 없다네. 예수님도 그러셨잖아. 악랄한 인간 때문에 십자가에 매달리고, 창에 찔리고, 대못에 박혀 죽었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인간을 용서하셨잖아. 뿐인가, 그 인간들에게 사랑의 씨앗까지 심어놓으셨네.”

친구는 예수님의 이야기라면 알 듯도 하였으나, 청년이 술주정뱅이와 창녀를 감싸는 것까지는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후 6개월인가 세월이 흘렀습니다. 청년은 지병인 폐결핵의 악화로 끝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상도 하지요. 청년이 죽은 자리에서 사랑의 싹이 트기 시작한 것입니다. 청년이 뿌려놓은 씨앗들인 주정뱅이와 노름장이, 창녀와 깡패들이 신앙의 꽃을 활짝 피워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또 다른 생』, 카가와 토요히코(賀川豊彦 1888~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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