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전대환 채널 바로가기

실린 곳 한겨레신문 
“산보나 봉케!”

남아공에 살고 있는 줄루 인들은 낯선 사람에게 마음을 쉽게 연다. 한 작은 줄루 마을에서 현지조사를 할 때, 상쾌한 새벽 공기만큼이나 나를 기분 좋게 해주었던 것은 사람들의 청량한 아침인사였다. 마을 사람들은 겸손하게 양 손을 들고 허리를 살짝 굽혀 “산보나!”라고 공손히 인사를 던지며 하루를 시작한다.

“산보나 봉케!(Sanbona, Bonke)”는 ‘여러분, 나는 지금 당신들을 보고 있습니다’라는 뜻이다. 이 인사는 아마도 19세기 초반 남부 아프리카의 정치적 변혁기에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한다. 남부 아프리카 흑인 사회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당시 상황으로 미뤄보아 아침에 사람을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한 인사가 되었을 것이다.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하는 서양식 인사보다 “밤새 안녕하셨습니까”라는 우리 인사법에 정서적으로 더 가까운 느낌이 든다. 줄루 인들의 정서는 우리의 정서와 많이 닮았다. 이 사람들에게 단수와 복수라는 문법개념은 별 의미가 없다. 원칙적으로 한 사람에게는 “사우보나!”라고 인사해야 함에도 굳이 “산보나!”라는 복수형을 고집하는 것은 “내 어머니”가 아니라 “우리 어머니”라고 말하는 우리 어법과 비슷하다. 오늘 아침, “산보나!”라는 인사를 던지며 수줍은 미소를 얼굴에 담은 채 부끄러운 듯 꽁무니를 빼는 줄루 마을 아이들의 정겨운 뒷모습이 떠오른다.

장용규/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어과 강사
이야기모음 사용 안내
627 우리나라 이야기 꾀많은 생도와 글방 선생님
626 우리나라 이야기 저승 차사(差使)의 사무착오
625 우리나라 이야기 호장지환(虎丈之患)
624 우리나라 이야기 식자우환(識字憂患)
623 우리나라 이야기 동네의 기본 구색
622 우리나라 이야기 좋은 세상
621 우리나라 이야기 아는 체
620 우리나라 이야기 떼돈 번 알거지
619 다른나라 이야기 난 당신을 채용하겠소
618 우리나라 이야기 사부님 장가보내기
617 우리나라 이야기 담력(膽力) 내기
616 우리나라 이야기 출세한 똥 장사
615 우리나라 이야기 호로자식과 화냥년
614 우리나라 이야기 게으름의 극치(極致)
613 다른나라 이야기 지구마을 아침인사: 이란 ― "살럼 알레이콤"
612 우리나라 이야기 양반은 한 냥 닷돈?
611 기타 이야기 투병중 종교적 신념 잃으면 사망률 높아져
610 기타 이야기 종교인이 가장 오래 살아
609 기타 이야기 신도의 변명

LOGIN

SEARCH

MENU NAVIG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