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전대환 채널 바로가기

실린 날 2008-04-04 
실린 곳 인터넷한겨레유머게시판 
종로의 한 중국집은 맛이 없으면 돈을 안 받는다.

그 집에 어느 날 할아버지와 초등학교 3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왔다.

점심시간이 막 지나간 뒤라 식당에서는 청년 하나가 신문을 뒤적이며 볶음밥을 먹고 있을 뿐이었다.

할아버지와 손자 아이는 자장면 두 그릇을 시켰다.

할아버지의 손은 험한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말 그대로 북두갈고리였다.

아이는 자장면을 맛있게 먹었다.

할아버지는 아이의 그릇에 자신의 몫을 덜어 옮겼다.

몇 젓가락 안 되는 자장면을 다 드신 할아버지는 입가에 자장을 묻혀가며 부지런히 먹는 손자를 대견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계셨다.

할아버지와 아이가 나누는 얘기가 들려왔다.

아이는 부모없이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사는 모양이었다.

손자가 하도 자장면을 먹고 싶어해 모처럼 데리고 나온 길인 듯 했다.

아이가 자장면을 반쯤 먹었을 때, 주인이 주방쪽을 대고 말했다.

"오늘 자장면 맛을 못 봤네. 조금만 줘봐."

자장면 반 그릇이 금세 나왔다.

주인은 한 젓가락 입에 대더니 주방장을 불렀다.

"기름이 너무 많이 들어간 거 같지 않나? 그리고 간도 잘 안 맞는 것 같애. 이래 가지고 손님들한테 돈을 받을 수 있겠나."

주방장을 들여보내고 주인은 아이가 막 식사를 끝낸 탁자로 갔다.

할아버지가 주인을 쳐다보자 그는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오늘 자장면이 맛이 별로 없었습니다. 다음에 오시면 꼭 맛있는 자장면을 드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가게는 맛이 없으면 돈을 받지 않습니다. 다음에 꼭 다시 들러주십시오."

손자의 손을 잡고 문을 열며 나가던 할아버지가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주인이 다시 인사를 하고 있었다.

"고, 고맙구려."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팔을 붙들려 나가면서 주인에게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주인은 말없이 환하게 웃었다.
이야기모음 사용 안내
627 우리나라 이야기 꾀많은 생도와 글방 선생님
626 우리나라 이야기 저승 차사(差使)의 사무착오
625 우리나라 이야기 호장지환(虎丈之患)
624 우리나라 이야기 식자우환(識字憂患)
623 우리나라 이야기 동네의 기본 구색
622 우리나라 이야기 좋은 세상
621 우리나라 이야기 아는 체
620 우리나라 이야기 떼돈 번 알거지
619 다른나라 이야기 난 당신을 채용하겠소
618 우리나라 이야기 사부님 장가보내기
617 우리나라 이야기 담력(膽力) 내기
616 우리나라 이야기 출세한 똥 장사
615 우리나라 이야기 호로자식과 화냥년
614 우리나라 이야기 게으름의 극치(極致)
613 다른나라 이야기 지구마을 아침인사: 이란 ― "살럼 알레이콤"
612 우리나라 이야기 양반은 한 냥 닷돈?
611 기타 이야기 투병중 종교적 신념 잃으면 사망률 높아져
610 기타 이야기 종교인이 가장 오래 살아
609 기타 이야기 신도의 변명

LOGIN

SEARCH

MENU NAVIG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