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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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린 곳 남산편지 210 
어느 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딸이 함께 여행을 하다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자동차가 언덕 아래로 글러 떨어지는 큰 사고였습니다. 어머니는 가벼운 상처를 입었으나 아버지와 딸은 모두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해야만 했습니다. 특히 딸의 상처가 깊어서 오랫동안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치료를 했으나 평생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할 신세가 되었습니다. 딸보다 먼저 퇴원한 아버지의 신세도 딸과 다름이 없다고 알려졌습니다.

사고 당시 사춘기에 있었던 딸은 무엇보다 마음의 상처가 깊었습니다. 학교가 파하면 다른 친구들이 조잘거리며 신나게 몰려다닐 때도 그 딸은 늘 혼자 목발을 짚고 외로이 집으로 와야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 같은 목발 신세인 아버지가 말동무처럼 딸에게 다가와 다정하게 대해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주어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딸은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투정을 부리는 딸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아버지가 나서서 말없이 그 투정을 받아 주었습니다. 딸에게는 아버지와 공원 벤치에 나란히 목발을 기대어놓고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유일한 행복이었습니다.

어려운 사춘기를 잘 넘기고 딸은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입학식 날 아버지가 학교에 같이 참석하여 딸을 껴안아 주며 말했습니다.

"네가 내 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구나. 너는 나의 자랑이며 보람이란다."

딸은 정말 행복을 느꼈습니다.

그 해 어느 날이었습니다. 세 식구가 나란히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아버지와 딸은 목발을 집고 가야 했습니다. 길을 걷는 그들 앞에서는 작은 꼬마 하나가 공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공이 큰길로 굴러갔습니다. 꼬마는 앞뒤를 살피지도 않고 공을 주우러 큰 길로 뛰어들었습니다. 길모퉁이에서 큰 트럭이 전 속력으로 달려나오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딸의 아버지가 목발을 내던지고는 길로 뛰어들어 꼬마를 안고 딩굴어 위험의 순간을 넘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꼬마를 안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길을 건너 달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순간적인 행동은 너무나 날쌨고 자연스러웠습니다. 목발 짚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동작이었습니다. 딸은 자기 눈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잠시 후 어머니가 다가와서 딸을 꼭 껴안고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얘야, 이제 말할 때가 된것 같구나. 사실 너의 아버지는 다리가 다 나았단다. 퇴원 후에 곧 정상이 되었거든. 그러나 네가 목발을 짚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아버지도 목발을 짚고 다니기로 작정하셨던 거야. 내가 말렸지만 너랑 아픔을 같이 해야 한다고 고집하셨던거야. 그러니까 그게 벌써 오년이 되었구나. 이 사실을 아버지 회사원도, 우리 친척도 아무도 모르지. 나와 아버지밖에 모르는 비밀이었지."

길 건너에서 손을 흔드는 아버지를 보며 딸은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가눌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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