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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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린 곳 한겨레신문 
“산보나 봉케!”

남아공에 살고 있는 줄루 인들은 낯선 사람에게 마음을 쉽게 연다. 한 작은 줄루 마을에서 현지조사를 할 때, 상쾌한 새벽 공기만큼이나 나를 기분 좋게 해주었던 것은 사람들의 청량한 아침인사였다. 마을 사람들은 겸손하게 양 손을 들고 허리를 살짝 굽혀 “산보나!”라고 공손히 인사를 던지며 하루를 시작한다.

“산보나 봉케!(Sanbona, Bonke)”는 ‘여러분, 나는 지금 당신들을 보고 있습니다’라는 뜻이다. 이 인사는 아마도 19세기 초반 남부 아프리카의 정치적 변혁기에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한다. 남부 아프리카 흑인 사회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당시 상황으로 미뤄보아 아침에 사람을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한 인사가 되었을 것이다.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하는 서양식 인사보다 “밤새 안녕하셨습니까”라는 우리 인사법에 정서적으로 더 가까운 느낌이 든다. 줄루 인들의 정서는 우리의 정서와 많이 닮았다. 이 사람들에게 단수와 복수라는 문법개념은 별 의미가 없다. 원칙적으로 한 사람에게는 “사우보나!”라고 인사해야 함에도 굳이 “산보나!”라는 복수형을 고집하는 것은 “내 어머니”가 아니라 “우리 어머니”라고 말하는 우리 어법과 비슷하다. 오늘 아침, “산보나!”라는 인사를 던지며 수줍은 미소를 얼굴에 담은 채 부끄러운 듯 꽁무니를 빼는 줄루 마을 아이들의 정겨운 뒷모습이 떠오른다.

장용규/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어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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