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없이, 딸만 하나 둔 칠십 노인이 있었다. 딸이 과년하여 데릴사위를 보았다. 자연히 노인의 재산은 사위에게 상속(相續)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운명인지, 그 후 노인이 아들을 얻게[生男] 되었다. 집안에는 꽃이 핀 것 같았다. 그러나 사위의 기분은 좋을 리가 없었다.
'집안의 재산이 어디로 갈 것이냐'
하는 데 온 신경이 곤두섰다.
장인은,
'내 아들이 위태롭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서 한 수단을 생각해 내고는 사위에게 문서를 하나 써 주었다.
"七十生男子非吾子 家中之物盡給女胥外人勿論"
이라는 내용으로서, 사위가 보니 썩 마음에 들었다.
"七十에 生男子하니(칠십에 아들을 낳았으니),
非吾子라(내 아들이 아니라),
家中之物을(집안의 재산을)
盡給女胥니(모두 사위에게 줄지니),
外人은 勿論하라(외인은 말 말라)"
는 것이리라. 그래서 사위는 장인이 죽을 때까지 그것을 잘 간직하고 있었다. 그 동안 처남을 잘 보살폈음은 물론이다.
장인이 죽은 후 재산 시비가 일어난 것은 필연적인 일. 그러나 사위는 당당하게 장인이 준 문서를 처남에게 보이며 재산을 독식(獨食)해버렸다.
아들은,
'우리 아버지가 그러셨을 리가 없다'
하여 관가에 사정을 호소했다. 원님도, 자기의 핏줄을 빈 손으로 쫓겨나게 했을 리가 없다 싶어 문서를 다시 자세히 보고 풀이를 한즉 사위는 무일푼으로 물러나야 했다. 원님의 풀이는 이러했다.
"七十에 生男子한들(칠십에 아들을 낳았은들),
非吾子리요(어찌 내 아들이 아니라 하리요),
家中之物을(집안의 재산을)
盡給하라(모두 줄 것이다)
女胥는 外人이니(사위는 외인이니),
勿論하라(말하지 말라)."
똑같은 말이 이렇게 달리 해석된 것이다. 그래서 <중심잡기>가 필요한 일이다. 어느 편에 서서, 누구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느냐에 따라 만사는 달라지게 되어 있다.
정신없는 오늘의 삶 속에서, 생각의 중심을 <나>에서 <다른사람>에게로 한번 옮겨 보자. 우리 모두가 그렇게 한다면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훨씬 살맛 나는 곳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