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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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린 곳 (정리: 전호영) 
그 유명한 강태공(姜太公), 아무 일도 안하고 글 공부만 하니, 60평생 가난할 수밖에 없다. 하여, 그의 조강지처(糟糠之妻)는 애가 마르고 고생이 자심하기 이를 데 없다. 여름이면 다래끼 메고 피 훑어 죽 쒀 먹고, 겨울이면 방아 품도 팔고 하여 호구지책(糊口之策)을 삼아 근근히 살아간다.

하루는 부인이 피를 훑어 쪄서 햇볕에 널어놓고 또 들로 피 훑으러 갔다. 뜨거운 오후가 되니 소낙비가 시작된다. 금방 폭우로 변하는 통에 집에까지 당도하기는 역부족(力不足)이다. 요즈음 같으면 전화라도 했으련만... 허둥지둥 집으로 와 보니, 그 사모(思慕)하는 피가 몽땅 다 떠내려가고 없다. 마당에다가 피다래끼를 내팽개치고는

'집구석에 사람이 있나 없나?'

하며 방문을 열어 젖히니, 태공이 방에서 멀끔히 내다보며 천연덕스럽게

"어쩐 일이오?"

하는 게 아닌가.
부인이 그만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다래끼를 짓밟고,

"내가 젊은 청춘을 저 남자한테 바쳐 이제는 백발(白髮)이 성성하지만, 더 억울해지기 전에 이제라도 팔자를 고쳐야지"

하고는 가출(家出)을 해버렸다. 그러나 고친 팔자(八字)도 칠자(七字)만 못했다.

한편, 강태공은 과거에 급제하여 급기야 어사(御使)가 되었다.
팔자 고친다던 전(前) 부인은 이번에도 피를 훑어야 하는 집으로 개가(改嫁)를 해서 냇가에서 피를 훑고 있는 중에 어사 행차를 보고 부러워서 탄식(歎息)한다.

"어떤 여자가 팔자가 좋아서 저런 남자하고 살꼬? 이 몹쓸 년은 팔자를 고쳤는데도 칠자만도 못하네."

태공이 수레 속에서 듣자 하니, 모습과 음성이 자기의 전 부인임에 틀림없다.

한 마디 댓구하기를,

"저기 저 여자는 팔자를 그냥 두었으면 좋았을 걸, 전팔자(前八字)나 후팔자(後八字)나 다름이 없네 그려"

한다.
부인이 들으니, 전 남편임에 틀림없다. 그만 쫓아가서 수레 앞에 엎드린다. 태공은 수레를 멈추게 하고 여자에게 올라오라고 했다.

"이제는 내가 시키는 대로 다 하겠소?"

"예, 죽기까지 복종하겠나이다"

부인이
'이게 웬 일인가'
하며 가격하는 가운데 집에 당도했다.
태공이

"물 한 동이를 이고 오시오"

하니 번개같이 이고 왔다.

"땅에 부으시오"

하니 시키는 대로 했다.

"물을 도로 동이에 담으시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죽으라시면 죽을 수는 있어도, 그것이 어찌 가능할는지요?"

이에, 태공이 한 마디 했다.

"물은 한 번 쏟으면 다시 담을 수 없고, 정조는 한 번 잃어버리면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것이오."

가부장적(家父長的) 전통에서 나온, 여성 인권 유린의 표본이라고 공격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생각을 떠나서 - 여기서 남성과 여성의 위치가 바뀐다고 하더라도 - 상대방에 대한 전폭적인 믿음을 끝까지 견지하자는 교훈쯤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에게 손해 되지는 않을 이야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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