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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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짐승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 화공이 있었다.

그는 이 세상의 모든 짐승을 단지 붓 한자루 먹물 한 종지로 묘사해 내는데, 그 절묘함이 가히 신선의 경지라, 대궐에까지 그의 명성이 알려져서 임금이 그를 불렀고 문무백관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대전에서 어명에 따라 온갖 짐승들을 일필휘지 그려내는데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그 신기에 감탄한 임금이 이윽고 크게 하사하며 주흥을 베풀었다. 주흥이 무르익어갈 무렵, 임금이 그에게 묻기를.

"그대의 재주는 과연 신필의 경지라 할 만 하오. 그런데 그대는 이 땅의 것이 아닌 영물도 그릴 수 있소?"

좌중은 일시에 조용해지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상감마마, 이 땅의 것이 아닌 영물이라면 무엇을 말함이옵니까?"

"음.. 바로 용을 말함이오."

"마마, 용 정도는 소인에게 아무 문제가 안되옵니다."

"호오~. 용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용은 그 상징하는 바가 천자의 의미도 있는 터라 어찌 듣기에는 화공의 말은 상당히 불경스럽게 비칠 뿐만 아니라, 임금과 조정의 신하들은 화공의 도를 넘어선 듯한 자기 자랑에 은근히 심기가 뒤틀렸다.

"그럼 그대는 진정 그리지 못하는 바가 없단 말이오?"

얼핏 날이 선 듯한 임금의 어투였다.

"하오나 소인에게도 정말로 그리기 어려운 것이 있사옵니다."

"그래 그것이 무언가? 무엇이 용보다 그리기가 어렵단 말인고."

"바로 저잣거리의 개, 소입니다."

"무엇이? 저잣거리의 개, 소?"

"무엄하다.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그런 터무니없는 농을 일삼는가?"

일순간에 주흥은 깨지고 한 신하의 일갈이 그에게로 꽂혔다.

"두어라. 어디 그 연유를 한번 들어나 보자. 그래, 왜 저잣거리의 개, 소가 가장 그리기 어려운가? 미리 말해두노니 만약 허튼 소리에 불과하다면 그대는 엄벌을 각오하라."

"마마, 아뢰겠사옵니다. 우선 용을 말하자면 인충(鱗蟲)중의 우두머리이며 그 모양은 다른 짐승들과 아홉가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사옵니다. 즉, 낙타(駝)의 머리, 사슴(鹿)의 뿔, 토끼(兎)의 눈, 소(牛)의 귀, 뱀(蛇)을 닮은 목덜미, 조개(蜃)와 같은 배, 잉어(鯉)의 비늘, 호랑이(虎)의 발, 매(鷹)의 발톱이옵니다. 그 중에서 9*9 양수인 81개의 비늘이 있고, 그 소리는 구리로 만든 쟁반을 울리는 듯 하고, 입 주위에는 긴 수염이 있고, 턱 밑에는 명주(明珠. 여의주)가 있고, 목 아래에는 꺼꾸로 박힌 비늘(逆鱗)이 있으며, 머리 위에는 박산(博山)이 있다 하옵니다. 또, 용의 턱 아래에 거슬러 난 비늘을 역린이라고 하는데, 이것에 손을 대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그 사람을 죽인다고 하옵니다. 또 어느 문헌에는 용에게는 귀가 없기에 뿔이 귀를 대신하다고도 하옵니다..."

"그만하라, 그래서 어찌 되었다는 말인가?"

"이렇듯 용에 대해서 전해오는 형용은 있사오나 정작 현물을 본 자는 한사람도 없사옵니다. 따라서 소인이 이를 바탕으로 하여 나름대로 적당히 용을 그려내어도 아무도 그 허물을 지적해낼 자가 없사옵니다."

비로소 임금과 신하들은 화가의 말에서 무언가 의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계속하라."

"하오나 저잣거리의 개, 소는 누구라도 익히 보아온 미물들인지라, 소인이 조금만 허투루 그려도 사람들은 당장에 제 그림의 허물을 지적하며 웃고 떠듭니다. 일이 이러할진대 어찌 저잣거리의 개, 소가 용보다 어렵지 않다 하겠사옵니까?"

그제야 임금은 무릎을 쳤고 문무백관들도 안도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화공은 앞서보다 더한 은전을 하사받고 귀향하였으며 임금은 크게 깨닫는 바가 있어서 백성들의 실제적인 현실 문제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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