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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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린 곳 남산편지 252 
친구를 만나러 집을 나서는 나를 붙잡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얘. 오늘 오존주의보랜다. 괜히 싸돌아 다니지 말고 일찍 들어오렴."

공기 중에 오존이 너무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사람들의 호흡기에 영향을 끼칠 정도가 된 것입니다.

친구와 만나 영화를 보고 햄버거를 먹으면서도 기분이 영 꺼림직해서 그냥 일찍 집에 들어가려고 친구와 헤어져 버스 정류장 앞에 서 있었습니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뿜어대는 매연까지 가세해 정말 숨을 쉬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저쪽 길 모퉁이에서 사람들이 다투는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더니 뭔가 부서지는 소리도 나고, 사람들이 몰려가는 등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얼른 뛰어가서 사람들을 헤치고 들여 다 보았습니다. 그곳에서는 서너 명의 단속반 아저씨들이 도넛과 샌드위치를 파는 작은 포장마차를 뒤집어업고 있었습니다. 계란이 깨지고, 베지밀 병이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도툼하니 맛있어 보이는 도넛들이 아무렇게나 길바닥에 쳐박혀 있었습니다. 한동안은 단속원들에게 사정도 하고 울부짖으며 막무가내로 매달려 보기도 하던 포장마차의 주인아저씨는 모든 것을 포기했는지 그저 멍한 표정으로 땅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포장마차에 있던 음식물을 차에 싣기 위해 길 한복판으로 옮기는 단속원들의 손길은 여전히 분주했고, 도로에는 버스들이 여전히 우악스럽게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마치 끓고 있는 압력솥 안에 서 있는 것처럼 숨이 막혔습니다. 흙 묻은 도넛과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베지밀 병들이 오존주의보보다 훨씬 더 사나운 경보를 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하는 짓일 텐데 그 사람 이제 그만 괴롭혀요."

한 아주머니가 갑자기 소리쳤습니다. 목소리가 떨리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한참을 주저하다 나선 모양이었습니다.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 중 몇몇이 조그만 목소리로 그 아주머니의 말에 동조했습니다.사람들의 반응에 놀랐는지 단속반 아저씨들의 손길이 좀 멈칫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말쑥한 정장 차림의 한 50대 아저씨가 뚜벅뚜벅 걸어 나오더니 길바닥에 뒹굴던 베지밀 세 병을 주워들었습니다. 그리고 멍하니 서 있던 주인아저씨의 주머니에 지폐 몇 장을 밀어넣고 돌아서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마치 그제서야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까 소리쳤던 아주머니가 우유 몇 봉지를 집어 들고 주인아저씨에게 돈을 지불했습니다. 이어서 아기를 업은 새댁이 삶은 계란 몇 개와 바닥에 떨어지지 않은 도넛 몇 개를 샀습니다. 그 후에는 줄을 지어서 사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할아버지는 주인아저씨의 어깨를 한참 두드려 주다 가시기도 했습니다. 저도 우유 한 봉지를 사 들고 그 자리를 빠져 나왔습니다. 얼른 집에 가서 어머니께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오존주의보보다 더 센 것을 발견했으니 세상은 충분히 싸돌아 다닐 만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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