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전대환 채널 바로가기

실린 날 1994-09-10 
실린 곳 《먼 그날 같은 오늘》 
사막에는 모래벌판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스텝지역이라고 하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는 가시덩쿨 같이 거센 풀들이 자란다.

너무도 놀라운 것은 사막지대의 양들은 이 가시덩쿨을 먹고 자란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흔히, 가장 순박하고 평화스러운 동물로 양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양들이 사람이 손으로 꺾으려 하면 긁히거나 찔려서 피가 나는 그런 억센 풀들을 먹고 자란다. 더구나 사막지대의 양은 얼마나 위장이 튼튼한지 비닐봉지를 다 먹어버리기 때문에 '사막의 청소부'라는 별명까지 얻어 듣고 있단다.

사막의 양치기들은 도시락과 물 한통을 들고 하루종일 이 양들을 몰며 풀이 있는 곳을 찾아 사막을 헤맨다. 담요 하나를 망토처럼 걸치고.

모래바람이 불어오면 양치기는 이 담요를 뒤집어 쓰고 몸을 엎드린다. 모래바람은 어찌나 강한지 얼굴에 맞으면 볼이 파일 듯 따갑고, 심한 경우는 자동차의 유리가 부옇게 파여나갈 정도란다. 담요는 또 급격히 내려가는 사막의 밤기온을 막아주는 데도 쓰인다.

하루종일… 사람의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는 스텝지역의 벌판을 헤매며, 때로는 모래바람에 시달리며, 양치기는 무슨 생각을 할까. 절대의 폐허, 적막함의 극치 속을 양들과 함께 오가며.

마치 수도자처럼 살아가는 그들의 하루를 바라보면서, 나는 아주 감상적이 되어 생각했었다.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면 이 사막에 와 양치기가 되었으면… 하고 말이다.

아침을 사는 사람, 그렇게 자라 달라고 나는 너에게 가르쳤다. 남들이 다 간 길, 남들이 다 자리잡은 거리를, 그런 인생을 살지 말라는 뜻이다.

두렵고 혼자이지만 그러나 아침을 사는 사람들의 발자국은 후에 오는 사람들에게는 길이 된단다.

― 〈사막에서 쓴 편지〉에서.

한수산, 《먼 그날 같은 오늘》(나남출판, 1994), 304-305쪽.
이야기모음 사용 안내
588 기타 이야기 전도
587 기타 이야기 무화과
586 기타 이야기 성경책이 非情의 총탄 막았다
585 기타 이야기 기도받는 불임환자 임신성공확률 2배 높아
584 기타 이야기 알아두면 유익한 말들
583 기타 이야기 신비한 인체
582 기타 이야기 당신이 가장 잘 아시나이다
581 기타 이야기 흰 얼굴의 악마
580 기타 이야기 기내 격투 주도 크리스천 토드 비머의 용기
579 기타 이야기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릴 수는 없다
578 기타 이야기 어제와 내일과 오늘
577 기타 이야기 '옛날의 나'를 버려라
576 기타 이야기 영웅의 증오
575 기타 이야기 기억에 없어도
574 기타 이야기 망각의 속도
573 기타 이야기 옛 농부들의 나눔 정신
572 기타 이야기 나는 정말 부자인가 - 체크리스트
571 기타 이야기 나는 정말 부자인가 - 체크리스트
570 기타 이야기 배고픔은 불편한 것일 뿐
569 기타 이야기 뇌물과 선물

LOGIN

SEARCH

MENU NAVIG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