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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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린 날 2001-12-20 
실린 곳 이야기나라 

고독하고 적막한 홀아비 사부(師父)님이 있었다. 열 두어 살 된 된 제자가 말했다.

"선생님, 사모님 한 분 모셔 드릴까요?"

노사부(老師父) 왈(曰)

"늙고 아무 것도 없는 나에게 누가 오려 한다더냐?"

당돌한 제자 놈이 말했다.

"우리 동네에서 수절(守節)하고 있는 그 청상과부(靑孀寡婦) 마님은 어떠실런지요?"

"야, 이 놈아, 그 부인은 재산도 많고 인품(人品)이 대쪽같아 어림도 없다. 못 올라갈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 했느니라."

"아닙니다, 선생님. 그 분도 사람인데요... 남의 눈 때문에 수절하는 것이지, 별 수 없을 겁니다요. 한 번 시작해 보십시다"

하고는

"이번만은 제가 하시라는 대로 하십시오"

하고 단단히 여쭈었다.

이놈은 다음 날 아침 일찌감치 그 과부 집 문 앞에 가서 외쳤다.

"선생님, 여기 계시옵니까? 선생님, 제가 왔습니다. 여기 계시지요?"

어리둥절해진 과부,

"너희 선생님이 여기 오시다니?"

"이상하다... 이 댁에 가신다던데..."

과부는 노발대발(怒發大發) 소년을 쫓아냈다.

다음 날 아침, 또 찾아가서 외쳤다.

"선생님, 여기 계십니까?"

하고 큰 소리로 외치고는

"선생님도... 요즈음은 글은 안 가르치시고 이 댁만 마음에 두시는가봐"

하면서 이웃집 사람이 들릴 만큼 중얼거린다.
이웃 사람들이 담 너머로 쳐다볼밖에...
글방에 돌아온 소년은 선생님께 작전을 설명해 드렸다.
선생님, 내일 아침에는 제가 그 과부를 불러내어 저를 따라오게 할 터이니, 선생님께서는 담 밑에 앉아 계시다가 재빨리 부인의 안방으로 들어가 이불 밑에 누워 계십시오."

다음 날 아침, 이른 시간... 과부댁 문전(門前)에서 큰 소리로 외쳐댔다.

"선생님, 선생님, 빨리 나오십시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부인은

"야, 요놈아, 너희 선생이 언제 여기 왔니?"

하고서는 빗자루 몽둥이를 들고 골목 밖까지 쫓아 나왔다.
선생은 그 사이 부인의 안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쓰고 누웠다.
소년은 부인의 약을 올리며 계속 화를 돋구다가 슬며시 부인에게 손목을 잡혔다. 그것도 다 작전...
부인은 소년의 손몫을 끌고 집 앞까지 왔다.

"요놈아, 녀의 선생이 어디 있는지 봐라."

"분명히 이불 밑에 계실걸요."

어느 새 동네 사람들이 와아 몰려 들었다.
소년,

"방에 들어가 볼까요?"

부인이 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이 봐라, 요놈아."

소년, 뒤쫓아 들어가 이불을 활짝 걷어 들친다.
선생님은 화급히 옷을 주워 입고 나오며,

"조놈 때문에 망신 당했네..."

하면서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온 동네 사람들이 숙덕거리다가 입을 모아 말했다.

"잘 됐구먼. 우린 이제 알았는데..."

수절 과부는 분하기도 하고 화도 났지만 그 지경에서 변명이 통할 리 없다. 이건 억지 춘양도 아니고, 보(褓)쌈으로 싸여 간 격이 되어 버렸다.
소년은 벙글벙글, 미리 준비해 두었던 떡이랑 과일을 가져와 온 동네에 다 돌렸고, 그 날은 자연스럽게 혼인 잔칫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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