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당신이 어떻게 죽을지 그 운명을 알고 계셨던 듯 합니다. 이 말슴의 요지는 '나는 죽을 것이다. 그러나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을 믿지 못하고 몹시 슬퍼하였습니다.
주후 124년, 그리스의 아리스테테스라는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기독교인의 죽음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그리스나 로마 사람들은 모두가 죽음을 무서워했는데 기독교인들은 그렇지 않은 것을 보고 놀랐던 것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죽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마치 혼인하러 가는 사람을 배웅하듯 감사 찬송으로 죽은 사람을 떠나보낸다네. 죽는 사람도 감사를 하지. 다른 이들은 결혼식에서 에스코트를 하듯이 망자를 어디론가 호송해 주었다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부활'을 믿기 때문입니다. 죽음으로 인한 이별은 얼마의 기간이 될지는 모르지만, 우주적 시간으로 볼 때 아주 '잠시' 동안 이별하는 일일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요한 11:25-26)
주후 124년, 그리스의 아리스테테스라는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기독교인의 죽음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그리스나 로마 사람들은 모두가 죽음을 무서워했는데 기독교인들은 그렇지 않은 것을 보고 놀랐던 것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죽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마치 혼인하러 가는 사람을 배웅하듯 감사 찬송으로 죽은 사람을 떠나보낸다네. 죽는 사람도 감사를 하지. 다른 이들은 결혼식에서 에스코트를 하듯이 망자를 어디론가 호송해 주었다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부활'을 믿기 때문입니다. 죽음으로 인한 이별은 얼마의 기간이 될지는 모르지만, 우주적 시간으로 볼 때 아주 '잠시' 동안 이별하는 일일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요한 11:2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