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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들도 빈 집에선 일찍 죽는다!"

by 마을지기 posted May 0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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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날 2010-08-24
출처 박범신, 《사람으로 아름답게 사는 일》(이룸, 2003), 66-67쪽
책본문 한 주일이나 열흘 쯤 비워둔 빈집을 열고 들어가보면 매번 집 안 이곳저곳에 벌레들이 죽어 있다. 가만히 엎드려 죽은 벌레들의 주검은 너무도 고요하고 요요(寥寥)하다. 요즘엔 무당벌레들이 그렇게 많이 죽어 있는데, 죽어 엎드린 무당벌레는 유난히 고요하고 또 깊은 사색에 잠긴 것처럼 보인다. 생로병사야 모든 살아 있는 것의 운명이니 무당벌레의 탄생과 소멸도 이상할 것은 없을 터이지만, 무당벌레의 주검들을 쓸어 담으며 내가 매번 마음이 아픈 것은 그들이 빈집에서 태어나고 살아서 제 명에 못 죽는구나 하고 느끼기 때문이다. 벌레들도 빈집에선 일찍 죽는다.

어떤 날 나는 비를 들다가 멈칫한다. 이상하다. 무당벌레들은 위험할 것 없는 텅 빈 고요한 집 안을 종횡무진 날아다니거나 기어다녔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들의 주검은 한결같이 출입구나 창 가까운 곳의 일정한 장소에 모여 있다. 혼자 멀찍이 떨어져 죽은 놈은 거의 없다. 마치 등을 댈 듯이 하고, 주검조차 무리를 이루고 있으니, 공연히 가슴이 철렁해진다. 죽음의 공포 때문일까. 아니면 살아서도 혼자 있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무당벌레뿐만 아니라 집게벌레 같은 다른 벌레들도 마찬가지다. 빈집에서 그들은 더 일찍 죽고, 그리고 죽은 놈 옆에 산 놈이 와서 등 기대고 또 죽는다.
벌레가 먹지 못하는 과일은
사람이 먹어도 해를 입습니다.
벌레가 살지 못하는 곳에서는
사람도 제대로 살 수 없습니다.

거꾸로, 사람이 살지 않는 집에서는
벌레도 제 명대로 살지 못합니다.
사람과 동떨어져 있는 자연은 없습니다.
벌레 한 마리조차 사람과 한 몸입니다.

이야기마을 옹달샘

전대환의 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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