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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점 헤는 밤

by 마을지기 posted Oct 0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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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날 2008-10-06
실린날 2008-09-17
출처 스포츠조선
원문 계절학기를 수강하는 겨울에는 재수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성적표 뒤 학점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성적표에 하나 둘 새겨지는 학점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학점 수가 너무도 다양한 까닭이요, 플러스, 제로가 너무도 복잡한 까닭이요, 헤아려봐야 밑의 평균과 다를 이유가 없는 까닭입니다.

A 하나에 기쁨과
B 하나에 안도와
C 하나에 씁쓸함과
D 하나에 괴로움과
F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학점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

수업에 대출을 해줬던 아이들의 이름과, 카트, 미니홈피, 위닝8, 이런 이국단어들의 이름과, 벌써 싸이 폐인이 된 친구놈들의 이름과, 가난한 동기, 선배들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현실과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A학점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궁금해 이 복잡한 학점이 내린 성적표 위에 내 이름자를 슥 보고 얼른 봉투 속으로 집어넣어 버렸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마시는 놈들은 부끄러운 학점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계절이 지나고 나의 학점에도 족보가 먹히면 중도 앞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적힌 성적표에도 자랑처럼 A 가 무성할 거외다.
다음은 윤동주 님의
〈별 헤는 밤〉 원문입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는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가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이야기마을 웃음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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