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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요한일서 1:1-4 
설교일 2022-10-02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성서 본문

 

이 글은 생명의 말씀에 관한 것입니다. 이 생명의 말씀은 태초부터 계신 것이요, 우리가 들은 것이요, 우리가 눈으로 본 것이요, 우리가 지켜본 것이요, 우리가 손으로 만져본 것입니다. - 이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원한 생명을 여러분에게 증언하고 선포합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우리는 여러분도 우리와 서로 사귐을 가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귐입니다. 우리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우리 서로의 기쁨이 차고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1-4

 

들어가는 이야기

 

어느덧 10월이 되었습니다. 벌써 깊은 산에서는 단풍이 물들고 있습니다. 이 좋은 계절에 세상으로 나가지 않고, 성도끼리의 사귐을 위해서, 예수님과의 사귐을 위해서, 이 귀한 자리에 참여하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위에 성령님의 놀라운 역사가 뜨겁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오늘은 사귐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사귐에 대하여

 

우리 조상들은 사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논교’(論交)라고 했습니다. 사귐에 대해서 논한다는 것이지요. 성호사설을 쓴 이익 선생께서는 사기(史記)에 나오는 글을 인용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귐을 논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사기부자가 벗을 사귀는 것은 가난한 때를 위함이요, 귀한 자가 벗을 사귀는 것은 천한 때를 위한 것이다라고 했으니, 가난하고 천하게 되어도 저버리지 않아야만 비로소 벗인 것이다. 또 옛사람의 말에 하나는 귀하고 하나는 천할 때에 벗의 정분을 볼 수 있고, 하나는 죽고 하나는 죽지 않았을 때에 벗의 정의를 알 수 있다라고 했으니, 이는 천고에 뼛속까지 찌르는 말이다.” (이익의 글 論交에서. 성호사설15). 정병헌 이지영 편, 우리 선비들은 사랑과 우정을 어떻게 나누었을까(사군자, 2005), 14.

 

지금 당장 벗과 사귀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이 별로 없을 수 있습니다. 굶어 죽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바다와 같아서 언제 풍랑이 칠지, 언제 무슨 변고가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언젠가 저는 낙동강 상류 탐사를 다녀왔는데, 보트를 타고 세 시간 정도 여기저기 다녔습니다. 보트를 타기 전에 착용해야 할 장구가 상당히 많더군요. 머리에는 헬멧을 써야 했고, 몸에는 구명조끼를 입어야 했고, 안경은 줄을 달아서 벗어지지 않게 묶어야 했고, 발에는 양말과 신을 벗고 보트용 신발을 신어야 했고, 휴대폰과 지갑 등 귀중품은 비닐봉지에 넣어 몸에 부착해야 했습니다. 사실은 그렇게 무장을 하지 않아도 당장에 큰일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만, 위험한 때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지요. 사귐도 이와 같습니다. 부자라고 늘 부자일 수는 없습니다. 존귀한 사람이라고 해서 영원히 그럴 수는 없습니다. 지금 건강하다고 해서 영원히 건강할 거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사귐이란 그래서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사귐

 

친구가 없는 사람에게 가장 괴로운 것이 외로움입니다. 전쟁터와 같은 세상에서 어떤 일로 다른 사람과 다투었을 때,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친한 친구가 있는 사람들은 그 친구들과 함께 대책을 의논합니다. 서로 힘을 주며 격려합니다. 그러나 내가 어려운 일을 당했는데, 찾아와 주는 친구가 하나도 없다면 그것처럼 딱한 일도 없습니다. 우리가 결혼하지 않아도 사는 데 큰 지장은 없지요. 그러나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혼생활이 가장 절실한 때가 몸이 아플 때라고 합니다. 평소에는 잘 모르지만, 몸이 아프면 누군가 옆에서 간호도 해야 하고 위로도 해야 하고 힘도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서로 사귀도록 하셨습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에도 그렇게 되어 있지요.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교통(交通)이라고 하니까 자동차 타고 비행기 타는 교통을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그런 교통이 아니고 사귐입니다. 그냥 서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주님 안에서 사귐을 가져야 합니다. 주기도문에서도 우리가 우리 죄를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고하지 않습니까? 서로 용서해주는 것도 참된 사귐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기도하라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입니다.

 

사귐의 백미(白眉)

 

뭐니 뭐니 해도 사귐 가운데서 으뜸은 예수님과의 사귐입니다. 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지요? 진정한 친구란 온 세상이 다 내 곁을 떠났을 때 내 곁을 찾아오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떠나더라도 내 곁을 찾아오는 사람, 있을 수 있지요. 그러나 최후의 그 한 사람마저 내 곁은 떠나는 일이 없다고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그런 경우라도 나를 찾아와서 나를 위로해 주고 내 편이 되어주시는 분, 그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분은 저를 위하여, 여러분을 위하여 목숨까지 버리신 분이시지 않습니까?

 

그런 까닭에 우리는 예수님과 사귀는 일에 있는 힘을 쏟아야 합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님과 사귐에 힘을 쓰지 않아도 지금 당장 무슨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예수님과 사귀는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미련한 짓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과 사귄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이겠습니까? 요즘 아이들을 보니까 남녀 한 쌍이 사귀기 시작할 때 두 사람이 합의를 하더군요. 그렇게 사귀기 시작하면 그 다음에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서로 연락을 합니다. 정기적으로 만납니다. 사귄 지 1, 100, 1년 등등의 과정을 기억하고 상대방의 생일이나 각종 기념일을 챙깁니다.

 

맺는 이야기

 

 

나는 과연 예수님과 사귀고 있는가?’ 지금 점검해보시기를 바랍니다. 매일, 시시때때로 예수님과 통신을 하는가, 정기적으로 예수님과 만나는가? 예수님과 관련한 각종 기념일을 챙기는가? 예수님께서 좋아하시는 일을 위하여 밤잠 자지 않고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는가, 등등.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예수님과 사귀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순위를 저 뒤로 두어 예수님에게 관심도 가지지 않고, 예수님께서 만나자고, 만나자고, 그렇게 애타게 찾아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처럼 예수님을 이웃집 강아지 보듯 한다면 나중에 정말 위급할 때 어떻게 예수님의 얼굴을 뵐 수 있겠습니까? 지금이라도 예수님과의 사귐을 점검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https://youtube.com/watch?v=uYWoe7IXTjs&feature=share&si=EMSIkaIECMiOmarE6JChQ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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