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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22-10-29 15:4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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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마가복음서 12:28-31 
설교일 2022-10-30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성서 본문

 

율법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다가와서,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예수가 그들에게 대답을 잘 하시는 것을 보고서, 예수께 물었다. “모든 계명 가운데서 가장 으뜸되는 것은 어느 것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이신 주님은 오직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사랑하여라.’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 이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마가복음서 12:28-31

 

들어가는 말씀

 

오늘은 종교개혁 505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우리 개신교회(protestant church)의 생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종교개혁의 의미를 살펴보고, 다음에는 그 정신이 어디서 나왔는지 성경에서 찾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이 정신을 우리 삶에서는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종교 혁명

 

15171031, 독일의 젊은 수도자 마르틴 루터는 자기 마을 교회 문에다가 대자보를 하나 붙였습니다. 대자보의 내용은 아흔다섯 개의 토론 주제였습니다. 루터가 보니까 당시 교회가 돌아가는 꼴이 이건 아니다!’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함께 토론을 좀 해보자, 하는 뜻에서 이런 불온한행동을 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종교개혁의 시작이었습니다. ‘개혁이라고 하면 영어로는 ‘reformation’이라고 하지요. 뭔가를 고친다는 말입니다. ‘혁명‘revolution’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쉽게 말해서 뒤집어엎는다는 뜻입니다. 그런 면에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개혁이 아니라 혁명입니다. 교회를 어떻게 고쳐보자고 시작한 일이지만, 루터의 사상은 기존의 사상을 완전히 뒤집어엎는 혁명 사상이었습니다. 루터가 들고나온 원칙은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오직 성서만으로’(sola scriptura), 또 하나는 오직 은총만으로’(sola gratia), 마지막 하나는 오직 믿음만으로’(sola fidei)입니다. 그냥 보면, 그게 뭐 그리 대수냐,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당시 상황에 비추어보면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성서만으로!’ 했는데, 왜 이런 말이 나왔는가 하면, 당시 교회에서는 성경 말씀보다는 교황이나 교회 성직자들의 말이 더 위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걸 뒤집은 것이지요. 교회의 전통이나 교황의 말보다 성경이 우리 삶의 지침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평신도들은, 성경이 라틴어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예 읽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루터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는데, 이 일이야말로 혁명 중의 혁명입니다. ‘오직 은총만으로!’(또는 오직 은혜만으로!’)도 그렇습니다. ‘은총’(恩寵)의 반대말은 무엇입니까? ‘거래지요. 은총이란 값없이 주는 것을 말합니다. ‘선물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은 아무런 대가(對價) 없이, 값없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주권을 가지고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그런데 당시 교회는 사람들에게 자꾸 하나님과 거래를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뭔가를 받기 위해서는 사람도 뭘 내놔야 한다는 것이지요. 사람이 가장 간편하게 내놓을 수 있는 게 돈 아닙니까? 그래서 교회가 신도들에게 자꾸 돈을 요구하게 되고, 교회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 곳이 아니라 돈 걷는 세무서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오직 믿음만으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지금, 당연히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에도 그렇게 되어 있지요 당시 교회는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공적’(功績)을 쌓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예를 들자면, 남을 돕는 것도, 그것이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기 위해서는 억지로라도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했고,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도, 자발적인 감사의 잔치가 아니라, 구원받기 위한 의무로 생각했습니다. 거꾸로 된 것이지요.

 

예수님의 혁명

 

이와 같이, 루터는 당시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뒤집어 엎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루터도 작심하고 뒤집은 것은 아닙니다. 재미 삼아 한 것도 아닙니다. 공명심에서 한 것도 아닙니다. 진리가 무엇인가, 무엇이 옳은 일인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기도하던 가운데, 교회의 원래 모습은 이래야 하는 것이다, 하고 근본을 찾은 것입니다. 혁명이란 제대로 된 것을 뒤집는 것이 아니라, 뒤집혀서 엉망인 것을 다시 뒤집어서 원래 모습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혁명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던 세상을 제자리로 바로잡아 놓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뒤죽박죽되면, 사람들이 뭐가 진짜 중요한 건지, 뭐가 덜 중요한 건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삽니다. 그래서 중요하지도 않은 것을 목숨처럼 떠받들면서, 정작 중요한 것은 하찮게 취급해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기지요. 이른바 율법주의가 그런 것입니다.

 

유대인의 율법 조항들은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해서 수백 가지가 됩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은 열 가지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조항들이 자꾸 생겨나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정작 중요한 계명들은 잘 지켜지지 않고, 밥 먹기 전에는 손을 씻어야 한다는 둥, 안식일에는 짐을 운반하지 말아야 한다는 둥이런 조항들에 얽매여서, 사람이 율법의 노예처럼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상황을 뒤집으셨습니다. 율법의 근본정신이 뭐냐, 오늘 신약성경 말씀은 예수님께서 그걸 분명히 짚어주신 내용입니다. 어떤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모든 계명 가운데서 가장 으뜸 되는 것은 어느 것입니까?” 이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이신 주님은 오직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사랑하여라’(신명기 6:4-5).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레위기 19:18). 이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공자께서는 일이관지’(一以貫之)를 강조하셨습니다. 하나의 원칙을 제대로 세우고 있으면 나머지 문제는 그걸로 다 풀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는 원칙, 이 하나만 가지면 다른 모든 문제는 저절로 해결됩니다. 수백 가지, 수천 가지 상황을 만나도, 이 원칙에 갖다 대면 다 답이 나옵니다.

 

삶의 혁명

 

우리 삶도 그렇습니다. 현대인의 생활이 얼마나 복잡합니까? 배워야 할 것도 많고, 기억해야 할 것도 많고, 익혀야 할 것도 무진장 많습니다. 너무 복잡해요. 그래서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원칙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는 다 까먹고, 우왕좌왕, 허둥지둥, 그저 바쁜 삶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최근 주식 때문에 손해를 보고 낭패를 겪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얼른 회복돼서 선의의 피해자가 안 생기기를 바라고 있습니다만, 참 안타깝습니다. 펀드가 뭔지, 주식이 뭔지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그런 것들로 해서 남들이 재미를 봤다니까, 너도나도 덤벼들었다가 대개 실패를 맛보게 되지요. 주식투자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만, 서민들이 원칙 없이 뛰어들었다가 투기꾼들에게 이용만 당하게 되니까 그것이 문제 아니겠습니까?

 

주식이란 회사의 자본금을 대는 방편입니다. 그 회사의 발전 가능성을 보고 자본금을 대고, 이익이 나면 돈을 댄 만큼 배당을 받고, 손해를 보면 공동책임을 지자는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이런 개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고, 주식시장이 오직 돈 놓고 돈 따먹기판이 되어버렸습니다. ‘돈 따먹기 판곧 놀음판에서는 꾼들이 아니면 손해를 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삶에도 혁명이 필요합니다. 혁명이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원칙을 찾는 것, 처음 모습을 찾는 것, 그것이 혁명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땀 흘려 일해서 벌어 먹고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어떻게 하면 일 안하고 먹고 살까, 그게 안 되면 어떻게 하면 일을 적게 하고, 편하게 먹고 살까, 그게 현대인들의 머리를 꽉 채우고 있습니다. 이거 뒤집어엎어야 합니다. 열심히 일해서 먹고사는 사람들이 존중받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돈 놓고 돈 먹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 경제의 대원칙입니다.

 

맺는 말씀

 

 

다시 말씀드리지만, 혁명이란 원래 자리, 원래 모습을 찾는 것입니다. 판이 뒤집혀서 난장이 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 혁명입니다. 복잡하고 현란한 속임수에서 벗어나서 제정신을 차리는 것이 혁명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도 그것이었고, 마르틴 루터가 실천한 것도 그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생각 없이 시류에 휩쓸리고 세파에 흔들리는 상태에서 탈출해야 하겠습니다. 오직 성경 말씀만으로, 오직 주님의 은총만으로, 그리고 오직 믿음만으로, 세상을 주도해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https://youtu.be/akNdkjZlt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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