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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22-10-15 11: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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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창세기 2:23-25 
설교일 2022-10-16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성서 본문

 

그 때에 그 남자가 말하였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남자와 그 아내가 둘 다 벌거벗고 있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창세기 2:18-25

 

들어가는 이야기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찌는 계절이지요? 모든 것을 풍성하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 위에, 쏟아지듯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한 몸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지육신을 하나로 모아서 한 몸이 되게 하셨는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한 단계 더 나아가셨습니다. 몸과 몸을 모아서 또 한 몸이 되게 하신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부부가 한 몸입니다. 부부는 사람은 둘이지만 두 몸이 합하여 한 몸을 이룹니다. 둘째는 우리 민족이 한 몸입니다. 남과 북으로 갈려 있지만 누가 뭐래도 우리는 하나입니다. 셋째는 예수님과 우리가 한 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한 몸입니다.

 

떨어져 있지만 한 몸인 것.

 

전도서 4장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남자가 있습니다. 자식도 형제도 없이 혼자 삽니다. 그러나 그는 쉬지도 않고 일만 하며 삽니다. 그렇게 해서 모은 재산도 그의 눈에는 차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가끔 이런 말을 합니다. 어찌하여 나는 즐기지도 못하고 사는가? 도대체 내가 누구 때문에 이 수고를 하는가?” 이 이야기에 대해서 전도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을 붙입니다. 혼자보다는 둘이 더 낫다. 두 사람이 함께 일할 때에,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넘어지면, 다른 한 사람이 자기의 동무를 일으켜 줄 수 있다. 그러나 혼자 가다가 넘어지면, 딱하게도, 일으켜 줄 사람이 없다. 또 둘이 누우면 따뜻하지만, 혼자라면 어찌 따뜻하겠는가? 혼자 싸우면 지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적에게 맞설 수 있다.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상이 노벨상인데, 1901부터 2008년까지 107년 동안 793명이 노벨상을 탔습니다. 어느 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받았겠습니까? 유대인입니다. 793명 가운데 178명이 유대인이었습니다. 전체 수상자의 22.5%입니다. 그 당시 세계 인구가 69억쯤이었는데 거기서 유대인은 1,300만 명 정도 됩니다. 비율로 따지면 세계 인구의 0.19%입니다. 0.19%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 상의 22.5%를 가져갔으니까 대단하지 않습니까? 어째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요? 제가 보기에 그것은 그 사람들의 공동체 의식 덕분입니다. 온 민족이 한 몸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고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제가 유대인을 찬양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떨어져 있지만 한 몸임을 깨달을 때 상상하지 못하는 힘이 거기서 나온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비유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끊어짐의 아픔.

 

추사(推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선생을 잘 아시지요. 이분이 57세 되던 해인 1842년에 그는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해 1215일에 그는 유배지 제주도에서 부인 예안(禮安) 이 씨의 부음(訃音)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조선 시대 선비들이 여자를 가볍게 여긴 걸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김정희 선생은 아내를 얼마나 사랑했던지,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런 시를 지었습니다. 월하노인 통해서 염라국에 하소연해 내세에는 그대와 나 서로 바꿔 부부 되어 천리 밖에 이별한 뒤 내가 죽고 그대 살아 지금 내 마음의 비애를 그대가 알게 했으면김정희, 配所輓妻喪(배소만처상), 유영봉 편, 너도 내가 그립더냐(늘푸른소나무, 2003), 179. 아내의 죽음이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내세에는 처지가 거꾸로 돼서, 지금 겪는 비애가 얼마나 큰지 아내에게도 좀 알려주었으면 좋겠다는 시입니다. 우리가 흔히 있을 때 잘하라고 하는데, 그냥 흘려들을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마음으로 하나 될 때 이런 시가 나오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여야 하는데 하나가 못 될 때는 엄청난 비극이 벌어집니다. 1982426일 경남 의령군 궁유면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궁유면 지서에 우범곤(당시 27)이라는 순경이 근무하고 있었는데, 이 친구가 부부싸움을 한 끝에 화가 나서 술을 마셨습니다. 우 순경은 밤 930분쯤 만취한 상태에서 지서의 예비군 무기고를 부쉈습니다. 거기서 총을 꺼내 마을을 돌면서 주민들을 쏴 죽였습니다. 이 사람이 해병대 출신의 특등사수여서 한 명 한 명 조준사격을 했습니다. 다섯 시간 정도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60여 명을 죽였습니다. 자신도 어떤 집에 들어가 가족을 인질로 잡았다가 수류탄으로 자폭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이게 아직까지 세계 총기 사건 중에서 최악입니다. 기네스북에도 올라 있습니다. 한홍구, 특강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한겨레출판(), 2009), 273. 부부 두 사람이 분명히 한 몸이어야 하는데, 그게 깨지니까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들.

 

로마서 12:5에 보면 우리가 여럿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으며, 각 사람은 서로 지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2:12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그들이 모두 한 몸이듯이, 그리스도도 그러하십니다.” 에베소서 4:16도 같은 말씀입니다. 온 몸은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속해 있으며, 몸에 갖추어져 있는 각 마디를 통하여 연결되고 결합됩니다. 각 지체가 그 맡은 분량대로 활동함을 따라 몸이 자라나며 사랑 안에서 몸이 건설됩니다.” 골로새서 2:19도 그렇습니다. 그는 머리에 붙어 있지 않습니다. 온 몸은 머리이신 그리스도로부터 각 마디와 힘줄을 통하여 영양을 공급받고, 서로 연결되어서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는 대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한 몸이 아닌데 한 몸을 이루는 것이 남자와 여자로 이루어진 부부입니다.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는 우리 민족입니다. 그러나 부부는 깨어질 수 있습니다. 남과 북도 지금 갈라져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우리는 결코 갈라질 수 없습니다. 우리 신앙의 눈이 어두워서 그렇지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는 영원히 변함이 없는 한 몸의 관계입니다. 부부관계는 한쪽에서 판을 깨려고 하면 막기가 어렵습니다. 남북 관계도 한쪽에서 협조하지 않으면 관계를 좋게 만들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는 다릅니다. 우리가 주님을 배반하고 우리가 나태해질지라도 깨어지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완전히 버려서 죽기까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35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와 우리를 갈라놓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맺는 이야기

 

이름만 들으면 아는 유명한 소설가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결혼한 지 20여 년 동안 그의 아내는 여러 번 두통에 시달렸습니다. 손발이 저리는 퇴행성관절염을 경험했습니다. 신경성 위장염도 앓았습니다. 그 일에 대해서 그는 아내에게 미안해합니다. 무엇이 미안한가 하면 아내가 마음껏 화를 내면서 속이 시원할 만큼 남편에게 소리칠 기회를 그가 원천 봉쇄해버렸다는 점입니다. 아내가 화를 조금이라도 내려고 하면 오히려 자기가 더 펄펄 화를 내어 아내의 기회를 박탈해버렸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그는 잔인했던 전술이라고 했습니다. 끔찍하다고 했습니다. 일 년에 몇 차례일망정 아내가 충분히 화를 낼 수 있게 참았더라면 아내는 아마 두통에 시달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퇴행성관절염으로 고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회고합니다. 박범신, 사람으로 아름답게 사는 일(이룸, 2003), 167.

 

 

골로새서 3:15에서 바울은 이렇게 권고합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이 평화를 누리도록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떨어진 두 몸이 진정한 한 몸이 되기 위해서는 평화가 필수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 평화를, 자신을 희생시키심으로써, 자신을 죽이심으로써 이루셨습니다. 남과 북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한쪽이 희생해야 합니다. 한쪽이 죽어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이 되기 위해서는 한족이 희생해야 합니다. 한쪽이 죽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머리가 되셨듯이, 죽는 쪽이 더 큰 쪽입니다. 희생하는 사람이 더 큰 사람입니다. 희생이 있는 관계는 깨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부부가 하나 되고, 남과 북이 하나 되고, 우리와 주님께서 하나 되는 것을 날마다 경험하며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빕니다.

 

https://youtu.be/0CfVyN1XT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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