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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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요한복음서 4:23-24 
설교일 2024-01-07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송구영신 

성서 본문

 

23참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24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요한복음서 15:12-13>

 

들어가는 이야기

 

2024년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생명ㆍ평화ㆍ선교 공동체입니다. 이건 제가 정한 게 아니고 우리 교단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가 전문위원을 선정해서 오랫동안 고민하면서 연구한 끝에 나온 결과물입니다. 풀어서 표현하자면, 우리 교회는 생명 공동체다, 평화 공동체다, 그리고 선교 공동체다, 그런데 우리는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 이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생명 공동체인지, 왜 평화 공동체인지, 그리고 왜 선교 공동체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생명 공동체

 

첫째, 우리는 생명 공동체입니다. 이 우주에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시지 않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은 생명체와 무생물체로 나뉘는데, 하나님께서는 특히 생명체를 창조하시고서 환호하셨습니다. 생명체 가운데서도 사람을 창조하시고 나서 더 기뻐하셨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만드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닮은 존재를 만드셨다는 거예요. 하나님과 똑같이 생긴 복제물을 만드신 겁니다. 우리는 다 자식을 끔찍이도 사랑하지요. 다른 사람도 다 사랑해야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자식을 특별하게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자식은 나와 꼭 닮은 나의 복제물이거든요. 간혹 얼굴이 부모와 안 닮은 아이도 있기는 하지만, 어딘가에는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식을 위해서는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거예요. 실제로 하나님의 외아들인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셨잖아요. 성경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건 하나님이 목숨을 버리신 사건이에요. 우리는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가운데 플라톤이라는 걸출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플라톤은 항상 네 가지 사실을 신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네 가지가 뭐냐, 이렇습니다. 첫째, 동물이 아닌 사람으로 태어난 것, 둘째, 여자가 아닌 남자로 태어난 것, 셋째, 외국인이 아닌 그리스인으로 태어난 것, 그리고 넷째, 소크라테스 시대에 아테네에 태어난 것입니다. 김형석, 한 권으로 보는 서양철학사 100장면(도서출판 가람기획, 1994), 56. 이 가운데서 남녀 차별은 이제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없어졌으니까 놔두고, 우리도 이건 감사해야 합니다. 동물이 아닌 사람으로 태어난 것, 외국인이 아닌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 그리고 그것도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된 이 시대에 태어난 것 등이지요. 이런 것들은 여간 큰 목이 아닙니다.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날 확률이 얼마나 희박한가 하면, 이렇게 비유합니다. 조그만 구멍 하나가 뚫린 나무가 망망대해에서 물결을 따라 떠다니고 있습니다. 백 년에 한 번씩 물 위로 머리를 내미는 눈먼 거북이가 우연히 그 나무 구멍 속으로 머리를 내밉니다. 사람으로 태어날 확률이 그 정도라는 겁니다. 이걸 맹귀우목(盲龜遇木)’의 확률이라고 합니다. 오강남,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현암사, 2006), 130. 불교에서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생명체 중에서 인간으로 태어날 가능성은, 넓은 들판 가득히 콩알을 널어놓고 하늘 꼭대기에서 바늘 하나를 떨어뜨려 콩 한 알에 박히는 확률과 같다.” 장영희, 내 생애 단 한 번(샘터, 2000), 17. 우리는 이처럼, 기적같이 이 땅에 태어난 생명입니다. 그 생명체들이 모인 공동체가 우리 교회입니다.

 

평화 공동체

 

, 그다음은 평화 문제입니다. 이 땅은 생명체들이 모여 사는 곳이고, 우리 교회는 그 가운데 일부입니다. ‘평화그러면 많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평화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고요한 상태다! 정말 그럴까요? 아닙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고요한 상태, 그건 평화가 아니라 죽음입니다. 공동묘지에 가보세요. 죽은 사람의 뼈를 모셔놓는 봉안당에 가보세요. 그 사람들이 싸웁니까? 갈등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어요. 아주 조용합니다. 그렇지만 살아 있는 생명체들이 모여 있는 곳은 언제나 시끄럽습니다. 분주합니다. 잡음이 납니다. 그게 정상이에요. 부부관계를 생각해 볼까요? 두 사람이 한 가정을 이루어서 부부가 됐습니다. 그 집이 온종일 조용해요. 그게 사람 사는 집입니까? 아니잖아요. 무생물들이 모여 있으면 모르겠지만, 생명체들이 모이면 부딪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정상이에요. 부부가 함께 살면 그 어떤 부부든지 갈등은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걸 인정해야 해요. 불행한 부부에게만 갈등이 있고 행복한 부부에게는 갈등이 없다는 생각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어떤 부부에게나 갈등은 있어요. 그것을 어떻게 잘 풀어나가는가, 하는 과정이 다를 뿐입니다. 이근후, 중년 여성 이야기(도서출판 한강수, 1994), 19. 어디 부부관계뿐이겠습니까? 본디 인간관계란 어떤 사이든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갈등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게 문제가 아니고, 그걸 풀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그게 진짜 문제입니다.

 

우리가 평화 공동체가 되자, 그랬잖아요? 다시 말합니다. 평화란 건, 절대적 평온, 정지, 무사, 고요의 상태가 아니라, 내부적으로 부단히 움직이면서 조화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입니다. 그게 진정한 평화입니다. 우리는 수십억, 수천억 분의 일의 확률로 인간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렇게 귀한 인연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한울교회라고 하는 하나님의 공동체로 모였습니다. 지금 지구에는 80억 가까운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우리가 스무 명쯤 되는 한울교회 공동체로 모였으니, 확률은 4억분의 일입니다. 욕조에서 넘어져 죽을 확률이 80만분의 일, 벼락에 맞아 죽을 확률이 430만분의 일,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이 800만 분의 일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한 공동체가 된 것이 4억분의 일이니까, 로또 1등 당첨 확률보다 어마어마하게 희박한 확률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엮이는 것을 인연이라고 하잖아요? ‘인연이 불교 용어인데요, 부부의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7천 겁, 부모와 자녀 사이가 되는 데는 8천 겁, 한 부모에서 태어난 형제자매가 되는 데는 9천 겁의 인연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게 괜한 말이 아니에요. 길 가다가 옷깃만 스치는 데도 5백 겁의 인연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라는 게 뭐냐 하면,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20리인 큰 반석을 솜털로 짠 베로 100년에 한 번씩 쓸어요. 그렇게 하면 표시는 안 나겠지만 반석이 조금씩은 닳겠지요. 무진장 시간이 걸릴 겁니다. 그렇게 큰 바위가 다 닳아 없어진다고 해도 1겁이 안 끝난다는 거예요. 그게 7천 겁, 8천 겁, 9천 겁이 지나야 이루어지는 게 한 가족이 되는 인연이라니까, 우리가 한울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한 가족이 된 게 얼마나 귀한 인연입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서로서로 대할 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이 우리 앞에 나타난 것처럼 존귀하게 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진정한 평화입니다.

 

선교 공동체

 

마지막으로, 선교 이야기를 잠깐 하겠습니다. 인간을 가리켜서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요? 함께 어울려서 살아야 한다는 이야깁니다. 혼자서는 살기 어려워요. 물론 무인도에서 몇 년씩 혼자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고, 이 시대 우리 주변에도 혼자 사는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모여서 함께 살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야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족을 주셨고, 가족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교회라는 공동체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괜히 교회에 모이도록 하신 게 아니에요. 우리에게 복 주시려고 그러신 겁니다. 함께 어울려야 건강하게 오래 살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이것보다는 다른 데 관심이 많습니다. 어떤 식단으로 밥을 먹어야 오래 사는가, 무슨 운동을 얼마나 해야 하는가, 맑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등 말이지요. 그렇지만 그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미국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미국인 다섯 명 중 한 명은 만성 외로움을 호소합니다. 늘 외롭다는 거예요. 한 연구에 따르면 그 수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60세 이상의 사람 중 40% 이상이 외로움을 느낀다고 보고되어 있습니다. 2015년에 영국 연구진들은 이런 조사를 했어요. 75세 이상인 사람들 네 명 중 한 명은 며칠 동안 누구와도 만나지 않았고 어떤 대화도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노년층의 약 40%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인생의 주 동반자는 TV.’ 지금이라면 스마트폰이다, 유튜브다, 이렇게 대답했을지 모르지요. 젊은 사람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린이 열 명 중 한 명은 친구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남자아이들이 더 심했는데요, 그들은 가까운 친구가 없다고 호소하는 비율이 두 배 가까이 높았습니다. 시카고대학교의 존 카치오포(John Cacioppo)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외로움은 혼자 있을 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교감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 발생한다.” 켈리 하딩(이현주 역), 다정함의 과학(도서출판 길벗, 2022), 125/704.

 

켈리 하딩이라는 사람이 다정함의 과학이라는 책을 썼는데, 거기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이 보니까, 사정이 딱한 사람들은 대개 비슷한 환경을 갖고 있더라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괴로움을 겪고 있는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분이 관찰한 바로는, 외로운 사람이 괴로워하더라는 겁니다. 학대받는 사람도 그렇고요, 가난한 사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또한 차별을 겪는 사람도 그랬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상황은 의료서비스만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의료보험 시스템이 아무리 잘 되어 있어도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누구도 외롭지 않아야 합니다. 가난을 물리쳐야 합니다.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누가 누구를 학대하는 일이 용납되지 않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이런 건 개인이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에요.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이 땅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면 됩니다. 예수님이 그러셨잖아요? 누가복음서 4:18-19입니다.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바로 이거예요.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됩니다. 정치인들은 자기들이 세상을 바꾸겠다고 합니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안 됩니다. 칭기즈칸도 못 했고, 나폴레옹도 못 했습니다. 심지어 공자가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병든 세상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이건 마치 무엇과 같은가 하면, 비행기 조종사는 독한 코냑을 석 잔째 마시고 있고 거대한 폭풍이 몰아치는데, 이 모든 문제는 무시하고 비행기 엔진만 고치려는 형국입니다. 켈리 하딩(이현주 역), 다정함의 과학(()도서출판 길벗, 2022), 63. 그러면 누가 세상을 고칠 수 있습니까? 누가 세상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오직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서 14:6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 오직 예수님만이 길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진리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생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교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선교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맺는 이야기

 

2024년 올해의 교회 표어를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생명ㆍ평화ㆍ선교 공동체라고 정했지만, 사실 이 표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한평생 가슴에 담고 실천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생명을 존중하고 평화를 사랑하고 선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의 제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교회가 진정 살아 있는 생명ㆍ평화ㆍ선교 공동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097 노예로 살기, 주인으로 살기
»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하나님의 공동체
1095 2022.11.6(일) 전대 목사 설교 안내
1094 혁명에 대하여
1093 모세의 아내
1092 한 몸이기에
1091 가을 밤 외로운 밤
1090 예수님과 사귀십시오!
1089 “무엇 때문입니까?”
1088 “모든 행실을 거룩하게 하십시오!”
1087 "누구 때문입니까?"
1086 하나에 대하여
1085 부자에 대하여
1084 빌립, 사마리아에 가다
1083 따로, 외딴곳에서, 조금
1082 행복해지는 기도
1081 "깨어 있어라!"
1080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079 요지부동 욥
1078 바울의 폭탄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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