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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갈라디아서 5:22-26 
설교일 2021-08-01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성서 본문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삶을 얻었으니, 우리는 성령이 인도해 주심을 따라 살아갑시다. 우리는 잘난 체하거나 서로 노엽게 하거나 질투하거나 하지 않도록 합시다.

 

갈라디아서 5:22-26

 

들어가는 말씀

 

이제 8월입니다. 덥다, 덥다, 하는 소리도 머지않아 들어가게 되겠지요. 그때는 이미 가을일 테고, , 하다 보면 올해도 지나갈 겁니다. 새해가 시작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그렇게 됐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우리가 모두, 코로나 걱정 없는 새날을 맞이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지난 몇 주 동안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 오늘이 마지막 시간입니다. 갈라디아서가 말하는 성령의 열매 가운데서 아홉 번째 열매는 절제입니다.

 

절제에 대하여

 

절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절약이란 말인데, 경제생활에서는 절약이 큰 미덕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오해하는 일이 있습니다. 무작정 안 쓰는 것이 절약인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그것은 아닙니다. 절약이란 쓸 데는 쓰되, 안 써도 될 데는 안 쓰는 것, 그런 걸 말합니다. 돈이라는 것은 쓰라고 있는 것인데, 안 써도 될 데에 펑펑 쓰고, 꼭 써야 할 데 쓰지 않는다면 그것은 절약이 아니라 어리석음입니다. 어디에 돈을 써야 하고 어디에 돈을 쓰지 말아야 할지 아는 것, 그것이 절제의 지혜입니다. 그런데 이게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지요. 성령을 받지 않으면 그거 못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 가운데서 절제가 떡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가운데서 절제가 마지막에 나오지요.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은, 그만큼 절제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다시 짚어 봅시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사랑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지만 무작정 사랑만 하면 큰일이 납니다. 기쁨도 그렇고, 화평도 그렇고, 인내도 그렇고, 친절, 선함, 신실, 온유,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모든 덕목에 절제가 없으면 죽도 밥도 안 됩니다. ‘절제란 자동차로 말하면 브레이크 장치입니다. 자동차 아낀다고 출발조차 하지 않고 세워두면, 그것은 절제가 아닙니다. 자동차라는 것은 타고 다니라고 만들어진 것입니다. 유익한 일에 쓰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써야 합니다. 그런데 자동차에 브레이크가 없다면 대단히 위험합니다. 긴급한 일이 생길 때, 신호가 바뀌었을 때, 앞차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졌을 때, 브레이크를 밟아야지요. 그렇지 않으면 사고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우리 삶에서 불필요한 충돌과 사고를 방지해 주는 것이 절제입니다.

 

무엇을 절제할 것인가?

 

, 그러면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절제하며 살아야 하는지 잠깐 살펴봅시다. 먼저, ‘시간의 절제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일이지요. 그래서 지금도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만, 이 예배는 한 시간가량 드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이 귀하고도 귀한 일이지만 하루, 온종일 예배만 드리지는 않잖아요. 일정 시간 예배를 드리면, 그 후에는 예배를 일시 중단하고 일상생활을 이어갑니다. 그것이 절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실 때부터 몸소 시간을 절제하는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루 단위로 세상을 창조하셨지요? 그리고 우리 사람이나 자연도 그에 순응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저녁이 되면 자고, 아침이 되면 일어나서 일하러 나가고, 때가 되면 밥을 먹고. 얼마나 절도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하루를 또 한 주간으로 묶으셨습니다. 엿새 동안은 열심히 일하고 이레째 되는 날에는 쉬라고 하셨지요. 그것이 절제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한 주에 한 번씩 주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절제의 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제입니다.

 

그다음, 또 하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생활의 절제, 곧 경제적인 절약입니다. 옛날 그리스에 제논이라는 학자가 있었습니다. 이 양반의 제자 가운데는 허영이 심하고 겉치레만 일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돈이 좀 많았던 모양입니다. 이 제자가 늘 절제 없이 돈을 쓰고 다니니까 스승인 제논이 야단을 쳤습니다. 그러자 그 제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 선생님, 제가 그만한 돈이 있어서 쓰는데 그게 무슨 잘못이 되겠습니까?” 그때 제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놈아, 생각 좀 해봐라. 소금이 많이 있다고 요리사가 요리할 때 소금을 잔뜩 집어넣으면 그 음식이 맛이 좋겠느냐?” 유능한 요리사는 재료가 많다고 아무것이나 펑펑 많이 집어넣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생을 제대로 운영할 줄 아는 사람은 돈이 많이 있다고 돈을 펑펑 쓰지 않습니다. 꼭 써야 할 곳에, 꼭 필요한 만큼만 씁니다. 그것이 절제입니다. 음식을 먹는 것도 그렇습니다. 무조건 비싼 음식을 많이 먹는다고 그것이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습니다. 땀 흘려 노동한 뒤에 새참으로 간단하게 먹는 국수 한 그릇, 그것이 우리에게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주잖아요. 그래서 옛날 그리스에서는 이런 격언이 전해 내려옵니다. 행운은 호화로운 식탁을 마련해 주지만, 절제는 만족스러운 식탁을 마련해 준다.” (스토바이오스) 탈레스 외(김인곤 외 역),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선집(아카넷, 2005), 613.

 

더 큰 일을 위하여

 

성경에서 절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요셉입니다. 요셉이 이집트의 보디발의 집에서 집사 노릇을 할 때, 주인의 아름다운 아내가 요셉을 유혹했던 일 기억하시지요? 주인의 아내는 날이면 날마다, 틈만 나면 같이 자자고 졸라댑니다. 그렇지만 요셉은 그 유혹을 딱 잘라 물리쳤습니다. 만일 요셉이 나이 많은 사람이었거나 성 불감증 환자였다면 요셉의 절제가 그렇게 빛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요셉은 그 당시에 피 끓는 젊은이였습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총각이었습니다. 지나가는 여자만 봐도 성욕이 일어나는 청년이었습니다. 절제라고 하는 것은 없는 것을 안 쓰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자제하여 쓰는 것입니다. 돈이 없어서 못 쓰는 것은 절제가 아닙니다. 돈이 있지만 쓸 데가 아니라고 판단해서 안 쓰는 것이 절제입니다. 성욕(性慾)이 없어서 유혹을 당하지 않는 것은 절제가 아닙니다. 성적인 욕구가 펄펄 끓어오름에도 불구하고, 정도(正道)가 아니기 때문에 삼가는 것이 절제입니다. 자동차로 보면 연료가 떨어져서 멈추는 것은 제동이 아닙니다. 씽씽 달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브레이크를 밟아서, 서야 할 곳에 서는 것이 제동입니다. 내가 쟤보다 힘이 약해서 못 때리는 것은 절제가 아닙니다. 내가 저놈보다 힘이 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때리는 것이 절제입니다.

 

만일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말을 듣고 로맨스를 만들었다면 그 집에서는 편하게 살 수 있었을지 모르지요. 그렇지만 성경에 나와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원대한 꿈을 위해 쓰임 받는 귀한 인물이 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어쨌든 요셉은 사서 고생을 합니다. 우리가 절제하며 산다고 당장에 복 받고 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교훈을 여기서 얻을 수 있지요. 요셉은 모함에 빠져서 감옥까지 갑니다. 그 뒤에 이러저러해서 이집트 왕궁의 관원을 알게 되지요. 요셉이 그 사람의 꿈을 멋지게 해몽해 줬는데, 그 사람이 감옥에서 나가면서, 요셉이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다고 외부에 알려서 석방되도록 해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감옥에서 나가고 나니까 꿩 구워 먹은 소식이에요. 그때도 요셉은 절제 정신을 발휘합니다. 요셉이 그래도 감옥에서 신임을 얻고 있었기 때문에, 석방되어 나가는 사람들을 이용해서 그 관원을 수소문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 좀 살려달라고, 왜 약속을 안 지키느냐고 전갈을 보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절제하고 참았습니다. 만일 그때 요셉이 이리저리 수를 써서 그 관원과 연락이 닿았다면 조금 일찍 석방될 수는 있었겠지요. 그러나 이집트의 총리 자리까지 올라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더 크게 쓰시기 위하여, 때가 되기까지 요셉을 그냥 감옥에서 썩게 두셨습니다. 하나님의 종답게, 요셉 또한 때를 기다리면서 절제했습니다. 그 결과 놀라운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맺는 말씀

 

 

이처럼, ‘절제라고 하는 것은 갈 때 가고 멈출 때 멈추는 것입니다. 힘이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무턱대고 내지르고 보는 것이 아니라, 때를 맞추어서 적절한 시기에 힘을 쓰는 것이 절제입니다. 우리가 시간을 쓸 때, 절제가 없으면 삶이 망가집니다. 우리가 이렇게 안식일을 지켜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절제 가운데서 최고의 절제입니다. 성령의 다른 열매와 마찬가지로, 절제 또한 우리 힘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제아무리 도를 열심히 닦아도, 제아무리 수련을 많이 해도, 절제하며 살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셔야 절제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절제는 성령의 그 어떤 열매보다도 소중한 열매입니다. 귀한 열매입니다. 왜냐하면 절제는 우리의 생명을, 우리의 목숨을 살려주고 지켜주는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성령의 능력으로 절제의 열매를 맺으면서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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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을 지켜주는 열매, 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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