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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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누가복음서 17:20-21 
설교일 2022-07-24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성서 본문

 

바리새파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물으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을 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보아라, 여기에 있다또는 저기에 있다하고 말할 수도 없다.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누가복음서 17:20-21

 

들어가는 이야기

 

다른 해였으면 지금쯤 여름성경학교가 열리고 있을 때입니다. 코로나 시국인 까닭에 여름성경학교를 쉬고 있습니다만, 내년에는 정상적으로 열리기를 희망합니다. 어제가 대서(大暑)였지요. 일 년 중에서 가장 더운 시기에 맞이하는 절기였습니다. 이렇게 무덥고 힘들 때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자리에 모이신 여러분 위에, 그리고 온라인으로 함께 예배드리는 여러분 위에,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넘치도록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할 때 매번 외우는 대목이 있지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 시간에는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그 문제를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도 이루려면 먼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겠지요. 마태복음서 18:14에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라도 망하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잃은 양의 비유를 말씀하신 뒤에 결론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보면 이런 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했는데, 그렇다면 이 말을 뒤집으면 하나님의 뜻이 되겠지요. 하나님의 뜻은,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도 망하지 않는 것그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고 하면, 그는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다 남겨 두고서, 길을 잃은 그 양을 찾아 나서지 않겠느냐?”(마태복음서 18:12) 이것이 예수님의 논리입니다.

 

예수님의 논리는 자본의 논리와는 다릅니다. 양 백 마리 가운데서 한 마리를 잃어버렸을 때, 자본의 논리를 따르면 그 양을 포기합니다. 차라리 돈 주고 다른 양을 한 마리 사는 게 낫지 왜 그 고생을 하느냐, 하지요. 아니면, 어떻게 하면 남의 집 양을 빼앗아 와서 백 마리를 채울까, 그런 궁리를 합니다. 예수님의 논리는 잃은 양생명으로 생각하지만, 자본의 논리에서 잃은 양은 그냥 일 뿐입니다. 아이를 잃어버렸을 때, 그 아이를 자신들의 생명으로 생각하는 부모라면 만사 접어두고 아이를 찾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를 자본으로 생각한다면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다시 하나 낳든지 어디서 입양해오든지 하면 되지, 왜 그렇게 기를 쓰고 아이를 찾으려 하겠습니까? 요한복음서 6:39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내게 주신 사람을 내가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모두 살리는 일이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사람도 가볍게 여기거나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잃은 양의 비유를 말씀하시기에 앞서서 예수님은 미리 결론을 선포했습니다. 마태복음서 18:6의 말씀입니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사람 가운데서 하나라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차라리 그 목에 큰 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낫다.”

 

땅에서도

 

별 볼 일 없는 사람도 똑 같이 귀하게 여기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인생관이고 역사관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하면 떠오르는 낱말이 무엇입니까? ‘사랑입니까? ‘자비입니까? ‘구원입니까? ‘십자가입니까? 그 어떤 이미지를 떠올려도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예수님의 열쇠 말(키워드)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한평생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사셨던 분이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셨던 것도 그것입니다. 사랑도, 자비도, 구원도, 십자가도 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가치들입니다. 하나님 나라 사람들이 가져야 할 것이 사랑과 자비의 마음이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구원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방법이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아무리 힘이 없어도, 아무리 돈이 없어도, 아무리 잘난 것이 없어도, 결코 소외되지 않고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나라, 그런 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외치니까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 오는 거요?’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보아라, 여기에 있다또는 저기에 있다하고 말할 수도 없다.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누가복음서 17:20-21). 약한 자를 돌보는 나라, 그런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인데, 그걸 찾기는 어딜 가서 찾습니까? 그냥 지금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것은 바로 그 뜻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우리 가운데 있는 겁니다. 우리가 실천하면 바로 지금 여기가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흔히 많은 사람이 생각하기를, 구원받기 위해서 예수 믿는다고 합니다. 옳습니다. 그러면 구원이 무엇이냐, 하면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어요. 이 세상은 천국 가기 위한 준비단계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뭐냐, 천국 들어가기 위한 입시학원쯤으로 생각합니다.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죽은 다음에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일이고,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면 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이루어지이다!

 

,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가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가 하는 문제가 남았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예수님은 명쾌하게 답을 주십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서 12:24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자기 한 몸을 푹푹 썩게 해서 죽으면 하나님 나라의 열매가 30, 60, 100배로 열리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잘나지도 않은 내 한 몸 죽어봐야 무슨 일이 일어날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복음서 13:32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겨자씨는 어떤 씨보다 더 작은 것이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 더 커져서 나무가 된다. 그리하여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죽어야 한다!’는 것은 순진하게 그냥 목숨을 끊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잃은 양의 비유를 다시 생각해 봅시다. 양을 치는 목자는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물을 건너고 산을 넘습니다. 어린 양의 생명을 건지기 위해서 자신의 시간과 돈을, 아니 생명을 희생한 겁니다. 자본의 논리로 따지면 미친 짓이지요. 그러나 생명의 논리로 보면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위하여, 남편이 아내를 위하여 자기 생명을 내어놓는 가정, 그런 곳이 하나님의 나라가 꽃피는 가정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자식이 부모를 위하여 자기 생명을 내어놓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회사 사장이나 중역이 비정규직 사원이나 말단 사원을 위해서 자기 생명을 내어놓는 회사, 그런 회사가 하나님의 뜻대로 운영되는 회사입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위하여, 다수자들이 소수자들을 위하여, 권력자들이 약자들을 위하여, 강대국들이 약소국들을 위하여 자신들의 생명을 기꺼이 내어놓는 세상, 그런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 곧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세상입니다.

 

맺는 이야기

 

 

예수님은 한평생을 그렇게 사셨습니다. 천대받는 어린이들을 챙겨주시기 위하여 어른들에게 욕을 먹었습니다. 창녀들과 친구가 되어주시기 위하여 양반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했습니다. 장애인들과 병자들을 고쳐주신다고 양반들에게 핀잔을 들었습니다. 이 모든 행동은 예수님의 생명을 내어주는 일이었고, 목숨을 걸고 해야 했던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자가 천국에, 곧 하나님의 나라에 못 들어간다고 하셨지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재산은 물론이고 생명까지 내어놓는 것이 하나님 나라 정신인데, 혼자 부자라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겁니다. 그러니 부자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전혀 인연이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마태복음서 6:33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면 나머지 문제는 모두 다 자동으로 해결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주님의 나라가 되기를, 이를 위해서 비록 작은 힘이지만 예수님의 뒤를 따라서 십자가를 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https://youtu.be/DvuAW3U-G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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