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_btn

무망지복(毋望之福) 무망지화(毋望之禍)

by 마을지기 posted Mar 19, 2017
Extra Form
성서본문 사도행전 3:16
설교일 2017-03-19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오디오파일 듣기/내려받기]

 

■ 성서 본문

 

그런데 바로 이 예수의 이름이, 여러분이 지금 보고 있고 잘 알고 있는 이 사람을 낫게 하였으니, 이것은 그의 이름을 믿는 믿음을 힘입어서 된 것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은 그 믿음이 이 사람을 여러분 앞에서 이렇게 완전히 성하게 한 것입니다.

 

― 사도행전 3:16 ―

 

■ 들어가는 이야기

 

내일이 춘분입니다. 낮의 길이와 밥의 길이가 같은 날이지요. 이것은 어둠과 밝음이 잘 어울린다는 뜻이고, 더위와 추위가 잘 어울린다는 뜻입니다. 양과 음의 조화가 잘 이루어지는 계절입니다. 이런 날은 일 년에 딱 이틀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과 영혼도 이처럼 조화가 잘 유지되기를, 그래서 여러분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성전 미문에서 일어난 일

 

사도행전 3장에 보면 중증 지체장애인의 병이 완전히 나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오후 세 시쯤, 기도시간이었습니다. 옛날 중동지방에서는, 유대교인이나 무슬림들이나 하루에 몇 차례씩 정해진 기도시간이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유대인들의 규정은 많이 완화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무슬림들은 지금도 대부분 철저히 기도시간을 지킵니다. 공항에도, 무슬림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에는 기도실(Muslim Prayer Room)이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인도에 갔을 때 보니까, 낮에 재리시장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갑자기 시장바닥에다가 자리를 펴더니 엎드려서 기도를 합디다. 2천 년 전 예루살렘 성전에서도 기도시간이 되어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미문’(美門)이라 부르는 성전 문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 보니까 하체를 전혀 쓰지 못하는 지체장애인이 하나 앉아 있었습니다. 구걸이라도 해서 먹고 살라고 사람들이 떠메어다 놓은 것입니다. 그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한 푼 달라고 손을 벌렸습니다. 베드로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돈이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십시오!” 하면서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랬더니,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그 사람은 즉시 다리와 발목에 힘을 얻어서, 벌떡 일어나 걸었습니다. 펄쩍펄쩍 뛰기까지 했습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설교합니다. “여러분 보셨지요? 베드로가 지체장애인을 고쳤습니다. 예수 믿으면 이렇게 불치의 병도 낫습니다.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 잘 믿으십시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이 관점은 핵심에서 벗어났습니다. 핵심은 마지막 문장입니다. 사도행전은 “그는 […]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갔다!”(사도행전 3:8)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아내를 죽인 남자

 

우리가 밑줄을 쫙 긋고 봐야 할 구절은 ‘베드로가 병을 고쳤다!’가 아니라 ‘베드로가 걷지 못하는 그 사람을 데리고 성전으로 들어갔다!’입니다. 성전으로 들어갔다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그것은 길가에 버려져서 멸시받고 천대받던 사람을 주류사회에 편입시켰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대접 못 받는 사람을 친구로 삼았다는 뜻입니다. 베드로가 그에게 동전을 던져주었다면 그것은 불우이웃 돕기입니다. 병을 고쳐주었다면 그것은 더 큰 자선입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거기서 머물지 않고 불우한 이웃을 내 식구로 만들었습니다. 베드로가 한 일은 단순한 불우이웃 돕기가 아니라 ‘하나님나라 운동’이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을 동등한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자는 운동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공정사회가 됩니다. 세상에는 여자라는 이유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돈이 없다는 이유로, 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며칠 전에 신문에 슬픈 이야기가 하나 실렸습디다(2017.3.3. 중앙일보). 한 남자 이야기입니다. 나이는 일흔 넷입니다. 그는 아내와 함께 50년을 서로 아끼며 살아왔습니다. 자식 둘을 대학에 보냈고 출가도 시켰습니다. 이제 아내와 둘이서 평온한 황혼을 맞을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밤중에 아내가 뇌졸중으로 쓰러졌습니다.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아내는 중증 치매란 후유증을 얻었습니다. 요양병원에 입원한 아내는 하루하루 낯선 사람으로 변해갔습니다. 가족들을 알아보지도 못했습니다. 험한 말 한마디 입에 담지 못하던 사람이 “이 새끼야”라고 욕을 해댔습니다. 음식을 먹일 때마다 몸부림을 쳐서 양손을 침대에 묶은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변해가는 아내의 모습을 그는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달 120만원씩 드는 병원비를 대는 자식들 보기도 힘들었습니다. 밤낮없이 아내의 기저귀를 갈고 음식을 먹이다가 설상가상 자기까지 이곳저곳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마저 쓰러지면…’ 하는 생각이 들자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며칠을 뜬눈으로 지새우다가 그는 마음을 굳혔습니다. 아내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장례식장까지 알아보고 꼼꼼하게 메모도 남겼습니다. 부모를 한꺼번에 잃고 경황이 없을 자식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유서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아들딸아, 우리 인생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 아버지는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너희에게 남겨줄 것이 없어 미안하구나.”

■ 예수의 이름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든 아내의 목을 눌렀습니다. 이 사람도 농약을 들이켰습니다. 아내 없이 산다는 것에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남자는 가까스로 살아남았습니다. 대신 아내를 살해한 죄인으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에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치매 환자 수는 2016년 기준 68만 명입니다. 앞으로 더 급격하게 늘어갈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치매 간병이 가족 책임입니다. 결국 가정 파괴로 이어지는 일이 많지요. 지금 우리 곁에 예수님이 계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전국을 두루 다니시면서 온갖 병을 고쳐주실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아쉽게도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좋습니까? 예수님은 그 일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하나님나라 운동을 통해서 이런 중증질병을 국가가 책임지도록 해야 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한 일이 바로 그겁니다. 그 지체장애인을 성전으로 데리고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그 누구도 감당하지 못했던 병자를 공동체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질병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공동체가 함께 책임지자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의 이름이, 여러분이 지금 보고 있고 잘 알고 있는 이 사람을 낫게” 했다고 했습니다. ‘예수의 이름’ 곧 ‘예수의 뜻’은 길 잃은 양 한 마리도 내팽개쳐 두지 않는 것입니다.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은 《사기》라는 책에서 이련 표현을 썼습니다. 세상에는 생각지 못한 복이 있다(무망지복, 毋望之福). 생각지 못한 화도 있다(무망지화, 毋望之禍). 지금 우리는 생각지 못한 화와 복이 찾아오는 세상인 무망지세(毋望之世)에 살고 있습니다. ‘무망지화’를 당하더라도 돈이 있으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런데 저나 여러분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여유가 없지요. 이때 무망지화는 재앙입니다. 팔자려니 하며 살면 되겠습니까?

 

■ 맺는 이야기

 

예수님은 그것을 원치 않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모든 사람들이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나라를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이 땅에 속히 하나님나라가 임하기를, 그래서 어떤 불의의 재난에서도 구원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설교일 설교구분 제목 성서본문 조회 수
836 2017-12-10 대림절 “당신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update 누가복음서 1:36-38 41
835 2017-12-03 대림절 승리의 순간을 위한 준비 누가복음서 1:24-25 86
834 2017-11-26 주일 지각 있는 사람 마가복음서 7:14-16 75
833 2017-11-19 감사절 추수감사절의 두 남자 누가복음서 14:12-14 93
832 2017-11-12 주일 독수리처럼 날아라! 이사야서 40:30-31 115
831 2017-11-05 주일 솔로몬이 그랬듯이, 그 여자가 그랬듯이 누가복음서 18:6-8 77
830 2017-10-29 기념주일 개혁, 누가 할 것인가? 이사야서 6:8 83
829 2017-10-22 주일 “다 들어주마!” 출애굽기 33:17-18 125
828 2017-10-15 주일 “신을 벗어라!” 출애굽기 3:5 165
827 2017-10-08 주일 기적이 시작되는 지점 사도행전 14:8-10 160
826 2017-10-01 주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누가복음서 11:1-4 120
825 2017-09-24 주일 늑대 두 마리 욥기 37:13 156
824 2017-09-17 주일 남자의 언어, 여자의 언어 창세기 2:22-23 198
823 2017-09-10 주일 각별한 당부 누가복음서 12:4-5 145
822 2017-09-03 창조절 그때, 다섯째 날 창세기 1:20-21 177
821 2017-08-27 주일 제비 잡는 물고기 빌립보서 2:14-15 192
820 2017-08-20 기념주일 왜 두세 사람인가? 마태복음서 18:18-20 218
819 2017-08-13 기념주일 잊지 말아요, 우리의 꿈을! 로마서 14:19 172
818 2017-08-06 주일 “누구 때문입니까?” 요한복음서 9:1-2 256
817 2017-07-30 주일 “내 마음이 얼마나 지랄 같은지” 이사야서 32:2 24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42 Next
/ 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