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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갈라디아서 5:22-26 
설교일 2021-06-20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성서 본문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삶을 얻었으니, 우리는 성령이 인도해 주심을 따라 살아갑시다. 우리는 잘난 체하거나 서로 노엽게 하거나 질투하거나 하지 않도록 합시다.

 

갈라디아서 5:22-26

 

들어가는 말씀

 

오늘은 갈라디아서가 말하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가운데서 화평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성경에는 화평이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평화또는 평안이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이지요. 같은 뜻입니다. 헬라어로는 모두 다 에리레네’(eirene)입니다. 평화, 성령의 멋진 열매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 평화가 깃들기를, 사람과 사람 사이에 평화가 튼튼하게 자리 잡기를, 그리고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평화가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평화란 무엇인가, 평화에 대한 정의(定義)가 많지만, 그 가운데서 제가 본 가장 인상 깊었던 정의는 황대권 선생의 말입니다. 이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평화는 상대방이 내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그만둘 때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황대권, 야생초 편지(도서출판 도솔, 2002), 235. 우리가 대부분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지요? 자식이 내 뜻대로 되기를 바랍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내 뜻대로 움직여주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게 됩디까? 안 되지요. 자식, 내 뜻대로 안 됩니다. 제 마음대로 하려고 해요. 남편이나 아내도 내 뜻대로 안 됩니다. 미운 짓만 골라서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그냥 내버려 두세요. 그게 상책입니다. 안 되는 걸 자꾸 시도하면 스트레스만 늘어납니다.

 

누르기 성공률 0%

 

그렇다고 또 손 놓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지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해야 합니다. 평화를 만드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 첫째는 누르기입니다. 강력한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거예요. 이게 정답은 아니지만 그래도 성공하면 어쨌든 상대는 잠잠해질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런 유혹을 많이 받아요. 625일은 한국전쟁이 일어났던 날이지요. 올해가 벌써 71주년입니다. 한국전쟁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잘못 알고 있는 게 있습니다. 그 당시 전쟁에서, 우리 남쪽은 가만히 앉아 있다가 북한테 일방적으로 당했다, 이렇게 배우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때 상황을 조금만 더 뜯어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1949, 전쟁 나기 1년 전이지요, 121일 이승만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국군의 북진을 희망하고 있다.” 북으로 쳐들어가겠다는 거예요. 그해 27일 국회 연설에서는 이런 말을 합니다. “북한을 평화적으로 병합할 수 없다면 국군이 반드시 북한에 진격할 것이다.” 그리고 1949717일 신성보 국방부장관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국군은 대통령의 진격명령을 대기하고 있다. 평양, 아니 원산을 하루 이내에 점령할 수 있는 자신과 실력이 있다.” 1949107일 이승만은 UP통신 부사장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국군의 훈련은 착착 성과를 올리고 있다. 개전(開戰)되면 3일 이내에 평양을 점령할 수 있다.” 그밖에도 전쟁불사를 암시하는 말들이 많았습니다.

 

전쟁이 나던 해지요. 1950년 신년사에서 이승만은 또 불길한 말을 합니다. “새해에는 거국적으로 실지회복에 노력할 때이다. 국제정세의 변화에 비추어보아 새해에는 우리 자신의 실력으로 통일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예나 지금이나 틈만 나면 국가안보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화를 위해서 안보는 정말 중요하지요. 그런데 말로만 떠든다고 안보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승만 보세요. 당장에라도 북진을 해서 무력으로 통일을 이룰 것처럼 떠들었지만, 결과는 어땠습니까? UN군이 참전하기 전까지 참담하게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실컷 떠들어놓고 정작 자기는 시민들 몰래 서울을 빠져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한강 다리까지 폭파했지요. 당시 대통령이던 이승만은 우리가 힘으로 북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힘만으로는 어렵겠지만 미국이 도와주면 가능할 거라고 믿었습니다. 힘으로 평화를 만들려고 했다는 거예요. 그 결과는 뭡니까? 남과 북이 함께 폐허가 되었습니다. 71년이 지나도록 평화는커녕 분단이 고착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평화는 힘으로 만드는 게 아닙니다. 이 방법은 100% 실패합니다.

 

침묵하기 성공률 50%

 

평화를 만드는 두 번째 방법은 침묵하기입니다. 옛날에 어떤 부인이 수도사에게 찾아와서 상담을 청했습니다. “수도사님, 남편의 신경질 때문에 도저히 그 남자와는 살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랬더니 수도사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 수도원 우물물이 참 영험한데, 그 물을 그릇에 조금 담으십시오. 그것은 성수입니다. 그리고 남편이 신경질을 내려고 하면 얼른 그 물을 입에 머금으십시오. 절대로 삼키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날 밤, 남편은 늘 그랬던 것처럼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자 부인은 얼른 낮에 퍼온 성수를 입에 담았습니다. 그 덕에 그날 그들은 싸우지 않고 무사히 지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부인은 남편이 신경질을 낼 때마다 입에 성수를 머금었습니다. 몇 달 동안 그 방법을 썼습니다. 그랬더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남편이 드디어 온유한 사람으로 변한 거예요. 수도원에서 떠온 그 성수, 정말 신통했습니다. 부인은 다시 수도원을 찾아갔습니다. 감사의 인사를 했습니다. 그때 수도사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습니다. “부인, 남편이 변화된 것은 이 우물물이 기적을 일으켜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건 부인의 침묵 때문이었습니다.” 장태원 편, 유머와 지혜(도서출판 Grace Top, 1997), 156.

 

우리 주변에 이른바 또라이들이 많지요. 오프라인에도 있고 온라인에도 있습니다. 또라이가 존재하는 거야 그러려니 하겠는데, 문제는 그 인간들이 나한테 화를 돋운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을 일컬어서 심리학에서는 감정 조종자라고 부릅니다. 이 감정 조종자들은 왜 그러고 다닐까요? 왜 남한테 불쾌감을 일으킬까요? 이 사람들이 그런 짓을 하는 이유는 외롭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관심을 받고 싶은 겁니다. 어떻게 하면 남의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을까요? 남을 긁는 거예요. 꼬집어보기도 합니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저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나 그걸 보고 싶어서 그렇게 합니다. 그 사람이 뭔가 반응을 보이면 그건 성공이지요. 거기다가 상대방이 화를 낸다면, 그건 대성공입니다. 그럼 당하는 사람 쪽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더 강하게 나서서 싸우면 될까요? 그건 안 됩니다. 큰일나요.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누군가 또라이 짓을 할 때, 온라인에서 폭언과 조롱을 쏟아낼 때, 그런 행동을 저지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완전한 무대응이에요. 대응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겁니다. 이게 침묵의 방법인데, 침묵은 정말 놀라운 의사소통 수단입니다. 그리고 침묵은 때때로 가장 좋은 복수의 무기이기도 합니다. 수재나 E. 플로레스(안진희 역), 페이스북 심리학(책세상, 2017), 전자책 438/646. 그렇다고 침묵이 능사는 아닙니다. 이 방법은 제 경험상 50% 정도 성공합니다.

 

성령의 도움 성공률 90%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지요. 당시 제자들은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서,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로 스르륵 들어오셨습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이게 샬롬!”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예수님은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기뻐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다음 말씀이 중요합니다. “성령을 받아라!”(22).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평화는 사람의 힘으로 오지 않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평화를 얻기 위해서 찍어누르는 방법을 쓰면 될 것 같지만 그건 100% 실패합니다. 그보다는 나은 방법이지만, ‘침묵50%밖에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내공이 생기고, 평화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갖추어집니다.

 

마더 테레사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마더 테레사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언젠가 정신병에 걸린 여성 환자가 자기 방에서 나와서 큰 소리를 지르면서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수녀들은 그 환자가 마더 테레사에게 덤벼들지 않을까 몹시 걱정되었습니다. 성경에도 있지만, 사람이 정신질환에 걸려 있으면 괴력이 나오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수녀들이 환자를 꼭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더 테레사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여자에게 다가가서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다정하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테레사가 그 여자의 튼튼한 어깨에 연약한 손을 살포시 얹었습니다. 그러자 여자는 거짓말처럼 순한 양처럼 조용해졌습니다. 그리고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T.T. 문다켈(황애경 역), 소박한 기적(위즈덤하우스, 2005), 169. 대단한 내공 아닙니까? 제가 방금 내공이라고 표현했습니다만, 이것은 성령의 능력입니다. 완력으로 상대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은 근본 해결책이 아닙니다. 임시방편일 뿐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 거기서 평화가 만들어집니다.

 

맺는 말씀

 

 

다시 말씀드립니다. 평화를 만드는 방법 세 가지 중 누르기 방법은 100% 실패합니다. 침묵하는 방법은 50% 정도 성공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도움을 받으면 90% 정도 성공합니다. 그러면 나머지 10%는 어떻게 합니까? 이건 사람의 힘으로 안 되는 거예요. 아무리 성령께서 도와주셔도 사람이 끼어 있기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안 됩니다. 거기서부터는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성령께서 도와주셔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 이거 우리가 인정해야 합니다. 이건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람의 한계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가 절실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평화가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평화가 없습니다. 남과 북도 아직 분단상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성령을 충만히 받아서, 이 어렵고 힘든 시기에 평화의 기운을 세상 구석구석 퍼지게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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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7 신실한 사람
1026 복을 베푸는 사람, 선한 사람
1025 정결한 예물, 친절
1024 마음의 피부, 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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