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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22-03-26 10: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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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마태복음서 5:13-16 
설교일 2022-03-27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성서 본문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짠 맛을 되찾게 하겠느냐? 짠 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데도 쓸 데가 없으므로, 바깥에 내버려서 사람들이 짓밟을 뿐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세운 마을은 숨길 수 없다. 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다 내려놓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다 놓아둔다. 그래야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히 비친다.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마태복음서 5:13-16

 

들어가는 이야기

 

몸이 무르익어 갑니다. 꽃들이 서로 경쟁하듯 피어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계절에 하나님 앞에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예배드리는 여러분에게 우리 주님께서 놀라운 은총으로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보고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하셨습니다. 또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하셨습니다. 세상에 물질들이 많고도 많은데, 어째서 예수님께서는 이 두 가지를 말씀하셨겠습니까? 그리고 왜 하필이면 소금과 빛을 동시에 말씀하셨겠습니까? 소금과 빛, 이 두 가지는 놀라울 정도로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금과 빛은 크게 세 가지 구실을 합니다.

 

소금과 빛은 세상의 부패를 막아 줍니다.

 

여러분이 익히 아시는 바와 같이, 바닷물에는 소금이 2~3%밖에 안 되지만, 바닷물은 소금 덕에 썩지 않습니다. 태양이 살균작용을 한다는 것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중국에 위구르인이란 종족이 사는데, 이 사람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세 번밖에 목욕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태어났을 때 한 번, 결혼식 전 날 한 번, 그리고 죽었을 때 한 번, 이렇게 세 번 목욕을 한답니다. 그러면 몸이 몹시 지저분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습기가 많은 곳에서 사는 우리의 상식일 뿐입니다. 그 사람들이 사는 곳은 태양이 좋고 공기가 건조하기 때문에 때가 안 묻는다는 겁니다. 때가 생길 겨를도 없이 모두 가루가 되어 떨어져버리는 겁니다. 타월이나 그와 비슷한 것으로 몸을 철썩철썩 털면 하루의 때는 말끔히 떨어집니다. 그렇게 하면 타월에 묻은 때까지 떨어져버립니다. 타월을 빨 필요도 없습니다. 후지이 야스오(삶과꿈 편집부 역), 의표를 찌르는 이야기(도서출판 삶과꿈, 1992), 167-168. 이와 같이 소금과 빛은 지저분함과 부패를 막아줍니다.

 

옛날 소돔과 고모라는, 거기에 의인 열 명만 살고 있었어도 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소금이 되고 그 사람들이 빛이 될 수 있었더라면 비록 악이 존재한다고 해도 크게 힘을 쓰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남주 시인이 이런 시를 썼습니다. 무궁무궁 금수강산입니다 우리나라 한두 놈의 부패로 이제 금수강산 썩지 않습니다 한두 놈의 타락으로 이제 금수강산 더러워지지 않습니다 한두 놈의 탐욕으로 동해바다 고갈되지 않습니다 삼월의 아기 우리 아기 얼뚱아기여 이제 한두 번의 칼질로 울음 그치지 않습니다 한입으로 터지는 사월의 아우성이여 이제 한두 놈의 총소리로 지워지지 않습니다.” 김남주, 싸움. 김남주, 사랑의 무기(창작과비평사, 1999), 11. 이 땅에 소금 구실을 하는 여러분이 버티고 있는 한, 빛 구실을 하는 여러분이 살아 있는 한, 한두 사람의 분탕질로 이 나라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소금과 빛은 세상을 맛나게 해줍니다.

 

우파니샤드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아버지가 소금을 한 손에 쥐고 아들에게 주면서 말했습니다. “이 소금을 물에 담그고, 내일 아침에 와 보아라.” 아들은 그대로 했습니다. 아침이 되자 아버지는 아들 슈웨따께뚜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어젯밤에 담가 두었던 소금을 꺼내거라.” 아들은 아무리 찾아보아도 소금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총명한 아들아, 소금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소금은 그대로 그 안에 있다. 이제 맨 위 표면에 있는 물의 맛을 보거라. 맛이 어떠냐?” “짭니다.” “그럼 물속 중간쯤에 있는 물의 맛을 보아라.” “짭니다.” “그래, 그 물을 버리고 다시 내게 오너라.” 아버지 말씀에 따라 물을 버리면서 슈웨따께뚜는 생각했습니다. ‘소금은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계속 그 안에 있었구나.’ “네가 그 존재를 볼 수는 없지만 그 존재는 여기 있는 것이다.” 찬도기야 우파니샤드 제 6131~2, 이재숙 편, 우파니샤드(도서출판 풀빛, 2005), 87-88.

 

소금이 있어야 음식의 맛을 낼 수 있습니다. 빛도 같은 구실을 합니다. 빛이 없다면 세상에 아름다움이란 것이 존재할 수 없지요. 빛이 있으니까 색깔도 있고 모양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소금이 맛을 낼 때 어떻습니까? 소금이 음식에 들어가서 우적우적 씹힌다면 영 거북합니다. 음식 속에 들어가면 소금은 제 몸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사람도 그렇지요.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해주고 기쁘게 해주고 즐겁게 해주는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비노바 바베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합니다. 진정한 교사는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 그의 곁에서 스스로 배울 뿐이다. 태양은 누구에게도 자기 빛을 주지 않는다. 다만 만물이 그 빛을 받아 스스로 자라갈 뿐이다.” 비노바 바베(김문호 역/사티쉬 쿠마르 편), 버리고, 행복하라(산해, 2003), 31. 이처럼 우리가 소금이 되고 빛이 된다는 것은 제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산다, 하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소금과 빛,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소금과 빛은 세상에 에너지를 줍니다.

 

날이 갈수록 이 세상에는 에너지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땅속에 들어 있는 석유는 머지않아 고갈이 될 것입니다. 아니, 고갈되지 않고 무궁무진 나온다고 하더라도 석유에너지는 대기를 오염시키고 오존층을 파괴하는 등, 세상에 많은 부작용을 가져옵니다. 지구 온난화 현상도 석유에너지가 주범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원자력을 이용하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일본의 사태에서 보듯이, 그것은 인류에게 엄청난 재난을 주는 위험한 방식입니다. 그래서 요즘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 태양열 에너지입니다. 설치비용이 많이 들기는 하지만 거의 부작용이 없는 에너지입니다.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빛이 곧바로 에너지가 되는 방식이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 그런데 태양열 에너지를 이용하려면 열의 저장방식이 문제가 되는데, 신기하게도 태양열을 저장하는 데 사용되는 것이 소금입니다. 소금이 바로 에너지가 된다는 것이지요. 그 당시에 예수님께서 빛과 소금을 연결시켜서 말씀하신 것이 이것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전도서 4:9-12에 유명한 말씀이 있지요? 혼자보다는 둘이 더 낫다. 두 사람이 함께 일할 때에,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넘어지면, 다른 한 사람이 자기의 동무를 일으켜 줄 수 있다. 그러나 혼자 가다가 넘어지면, 딱하게도, 일으켜 줄 사람이 없다. 또 둘이 누우면 따뜻하지만, 혼자라면 어찌 따뜻하겠는가? 혼자 싸우면 지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적에게 맞설 수 있다.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사람이 혼자 살면 춥습니다. 체온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옆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위로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고, 에너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맺는 이야기

 

 

오늘 저는 소금과 빛에 대하여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소금과 빛은 첫째, 세상의 부패를 막아준다는 것, 둘째, 세상을 살맛나는 곳으로 만들어준다는 것, 그리고 셋째, 세상에 힘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소금과 빛은 세상에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자기를 대접해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공을 알아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 존재가 없어지는가, 또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정말 멋지고 고귀한 삶입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도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서, 가장 예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제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https://youtu.be/SMr67T3Lx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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