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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생이 쓴 ‘쉽게 씌어진 시’

by 마을지기 posted Apr 23,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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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날 2007-04-23
실린날 2002-11-14
출처 스포츠투데이
원문 채점 중에 비가 좍좍 내려
대학교는 남의 나라
재수생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불신과 쪽팔림 가득히 담긴
보내주신 학원비 봉투를 받아
학원 프린트를 끼고
늙은 강사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고딩 때 친구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나
나는 다만, 홀로 재수한 것일까?

대학은 가기 어렵다는데
답안지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대학교는 남의 나라
채점 중에 비가 좍좍 내리는데
점수를 매겨 한숨을 크게 내쉬고
고삼 때만 못한 성적표를 기다리는 재수생인 나
나는 나에게 삭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후의 삼수
아래는 윤동주의 시 원본입니다.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詩)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時代)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最後)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은 최초(最初)의 악수

이야기마을 웃음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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